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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뒷골목 수프가게
존 고든 지음, 김소정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아서는 조직관리에 관한 노하우를 전하는 책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자의 집필의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제목 같습니다. 저자의 생각이 완벽하게 담긴 원제목 <SOUP: A Recipe to Nourish Your Team and Culture>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고 하겠습니다. 자기계발로 되어 있는 책분류 역시 조직관리로 해두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뉴욕에 관한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책을 고른 저 역시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줄로 정리해보면 맛있는 수프는 좋은 재료만으로 끓여지는 것이 아니라 끓이는 사람의 노하우, 우리말로 하면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팥죽을 끓여보신 경험이 있는 분은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좋은 팥과 잘 만든 새알심을 넣어서 팥죽을 끓이는데 중요한 것은 팥죽이 완성될 때까지 잘 저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젓지 않으면 팥죽이 눌어붙기 마련입니다. 조직관리 역시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수프 끓이기에 비유한 것입니다. 좋은 인재들로 구성된 조직이라고 하더라도 조직원들 간의 사랑과 소통이 원활한, 에너지가 넘치는 조직문화가 없다면 결국은 와해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계발서나 조직관리에 관한 책을 보면 저자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핵심요령을 간추려 제시하고 그 내용을 설명해가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입니다만, 이 책은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조연으로 나오는 컨설턴트가 꼬투리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핵심을 짚어주고 주인공이 이를 자신의 회사에 적용하여 성과를 보인다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말은 될지 모릅니다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조직관리의 기본원칙은 같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몇 평짜리 수프가게에서 얻은 팁을 흔들리고 있는 굴지의 수프제조회사, 느낌 같아서는 캠벨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를 살리는 묘방으로 써먹을 수 있을까요? 이 또한 선입견일까요?
어떻든 식품업계의 우상이었던 수프 사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고 하는데, 마케팅도 문제가 없고 광고도 문제가 없는데 오로지 독성이 잔뜩 낀 공기에 점령당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회사경영의 경험이 전무한 마케팅팀장 낸시가 회사를 구하는 잔 다르크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는 설정도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전문지가 수프사의 잔 다르크가 어떤 완벽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성공 확률은 0에 가깝다는 전망을 내놓은 상황에서 낸시가 뒷골목 수프가게에서 얻어들은 처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랑으로 냄비젓기, 2. 희망으로 이끌기, 3. 비전 전파하기, 4. 신뢰감 쌓기, 5. 소통으로 관계의 공백 채우기, 6. 언제나 솔직하기, 7. 참여하는 관계 만들기, 8. 영감과 격려, 권한 분산, 지도 넣기, 9. 감사하기, 10. 열정으로 뜨겁게 하기, 11. 하나 되는 통합 창출하기. 사실 이런 처방들은 평상시 조직관리 기술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와해직전의 조직을 구하는 처방으로 사용해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에는 수프사의 이사들처럼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 보아도, 저자가 제시하는 이런 방법들은 평상시 조직관리의 팁으로 활용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뉴욕 뒷골목에 있다는 그 <엄마가 끓이는 수프>라는 가게는 진짜 있나요? 우리나라에서도 어머니의 손맛을 강조하는 식당들이 많습니다만, 미국에서는 어머니보다는 할머니를 선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코카콜라가 제조비법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는 것처럼 잘 나가는 식당에서 수프 맛이 좋다면서 맛있는 수프를 만드는 비결을 알고 싶다는 손님을 선뜻 주방으로 모시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책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