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 - 시간과 사람과 풍경이 수놓는 아름다운 우리 강 문화 에세이
한승원 지음, 권태균 사진 / 김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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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살던 곳에는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엇하지만 개울보다는 큰 강이 흘렀습니다. 동네사람들은 댓똘이라고 불렀습니다. 동네청년들이 미역을 감기도 했지만 물을 무서워하는 저는 무릎보다 깊이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이 강이 어디로 흐르는지 무척 궁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강을 만나게 되면 이 물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입니다. 미국에서도 미시시피강의 상류에 해당되는 미네소타의 트윈시티에 살았는데, 그때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는 미시시피강의 시원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여기 살고 있는 곳 근처를 흐르는 강에 대하여 시시콜콜한 것까지 뒤져내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한승원 작가님이신데, 고향땅 장흥 가까이 흐르는 영산강 유역을 샅샅이 다니면서 알아낸 내용을 <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에 담았습니다. 일종의 영산강 지리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강은 태초로부터, 고즈넉한 밤, 달과 별과 은밀한 사랑을 나누며 굽이굽이 전설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들려주는, 여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작가는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강 앞에 서면 사람들도 하나하나의 풍경이 되고, 역사도 강바닥을 디디고 선 갈대숲이나 수양버들이나 개개비나 두루미나 황새나 해오라기나 청동오리 처럼 한 자락 또 한 자락의 풍경이 된다(9쪽)”라고 했습니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도 한 방울의 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담양 북편 산기슭까지 시원을 찾아갔습니다. 가는 길에는 반가운 사람들을 불러내 동행하면서 자연을 같이 즐기는 여유로운 여행이었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영산강의 시원이 담양 용추봉 아래 가마골에 있는 용소에서 시작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읽다보니 용소에 상류로부터 흘러드는 폭포가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용소가 시원이 아니라 그 폭포물이 시작되는 곳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야 맞을 것 같습니다. 용소로부터 영산강이 흘러드는 바다까지 따라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산강으로 합쳐지는 지류들도 뒤쫓고 있어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영산강 유역에 흩어져 있는 동리에서 배출한 걸출한 인사들은 물론이고 영산강 주변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모아두었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되었습니다. 남원에 살면서 구경 다녔던 소쇄원이나, 송강정 등등 익숙한 이름들이 나오면 더 반갑고 잊어버리거나 그때는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되는 재미도 있습니다. 저자는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지천까지 살피기 위하여 2만 5천분의 1지도에서 영산강 줄기가 마치 겨울철의 나목이 된 거대한 노거수의 모양새와 같다는 것을 발견해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는 전라남도의 서남 서북권인 무안, 함평, 영암, 나주, 장성, 화순, 광주, 담양을 적시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고사도 인용하고, 이곳 출신 문인들의 시 혹은 문학작품들을 인용하여 그 의미를 짚어보고 있어 그야말로 영상강 의 인문학적 지리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관동별곡과 사미인곡으로 잘 알고 있는 송강 정철이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취조하면서 무려 1천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호남을 역모의 땅으로 인식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학적 성품은 그의 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재 너머 성권농 집에 술 익는단 말 어제 듣고 /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 아헤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 일러라(49쪽)”

 

저자는 영산강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오랫동안 꿈꾸어왔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는 자료조사와 현지답사를 통하여 확인작업을 해왔던 것인데, 그 범위에는 외래 민족의 침탈, 이 땅 관리들의 착취, 수탈, 그로 인한 토착 서민들의 저항의 역사, 노령산맥 이남의 굽이굽이에서 태어난 고귀한 인물들의 삶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장엄한 교향곡, 한 편의 위대한 서사시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강 앞에 서면 작가라는 사람도, 그 강위를 흘러갔거나 지금 흐르고 있는 역사도 하나하나의 풍경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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