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조정우 지음 / 청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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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맞붙던 조선 숙종 시절, 내명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권력싸움의 이면사인 만큼 희빈 장씨의 삶은 소설, 드라마 그리고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곤 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다양하다 보니 누구를 주인공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를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전개해나갈 수 있어, 볼 때 마다 흥미를 돋우곤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작품으로는 드라마 <동이>에서는 궁인에서 19대 숙종의 후궁에 오르고 그의 아들 연잉군을 21대 영조로 등극하게 만든 숙빈 최씨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그동안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의 갈등을 주요테마로 했던 전작들과는 다른 맛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이순신 불멸의 신화; http://blog.joins.com/yang412/13475791>에서 이순신 장군이 23차례의 해전을 승리로 이끈 전략에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전개로 주목을 끌었던 조정우 작가의 <장옥정>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미모를 바탕으로 자신의 야심채우기에만 급급하던 요부의 이미지가 강했던 장옥정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요부의 이미지가 강조되던 장옥정과는 다른 인간 장옥정의 모습을 그려냈다고 할까요? 그리고 요즘 막바지에 이른 드라마 <유혹>에서 여자라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아진그룹의 사장처럼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 그리고 영빈 김씨와 숙빈 최씨 등 적지 않은 여인네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줏대없는 숙종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희빈 장씨의 삶은 천인출신 궁인에서 숙의 희빈을 거쳐 중전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숙종의 왕위를 물려받게 되는 경종을 출산하기에 이르렀지만, 남자를 독점하고자 하는 욕심이 과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사약을 받고 스러지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요약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옥정은 역관으로 날리던 아버지 장경이 죽고 사촌형 장현에 의탁하고 있었던 것인데 장현이 역모에 휘말리고, 역시 역모에 휘말려 노비로 몰락했던 어머니 윤씨의 신분 때문에 천인으로 굴러 떨어진 신세가 된 것입니다. 역경에 굽히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경지로 나가는 법입니다. 양반의 첩실로 가느니 중인의 정실이 되고자 했던 옥정은 신분제도가 바뀌는 바람에 천인이 된 자신의 처지를 바꾸기 위하여 궁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토록 천대받고 사느니 차라리 궁인이 되자! 내 반드시 임금의 총애를 얻어 마음의 한을 풀고 가문의 누명을 벗기고야 말리라!(47쪽)” 그야말로 목적의식이 뚜렷한 신여성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옥정은 궁에 들어가자마자 중전 인경왕후의 죽음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숙종의 승은을 입기에 이르지만, 백부의 역모사건의 배후인 대비의 농간으로 궁에서 퇴출되고 맙니다. 서인과 남인의 힘겨루기가 진행되면서 옥정의 환궁이 불투명하지만 남자 숙종의 마음은 여전히 옥정에게 머물고 있습니다. 대비가 고른 민유중의 여식 인현왕후가 나이도 옥정보다 어리고 현숙하고 더 아름다워 숙종의 마음이 기울고 있음에도 옥정을 잊지 못하는 것은 작가가 따로 드러내지 못한 무언가 비술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숙종이 부탁하는 거문고연주만으로는 숙종의 마음을 훔쳐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재주를 작가는 “(옥정이) 사내의 마음을 홀리는 재주가 탁월하다.”라고 표현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은 지나친 생략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옥정의 재치는 탁월한 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궁에서 쫓겨나 숭선군의 집에 의탁하고 있을 때 찾아온 숙종의 편지를 읽다가 왕이 지금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대목입니다. “옥정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서찰에 떨어졌다.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던 옥정은 문득 서찰의 글씨가 눈물에 많이 번진 것이 쓴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46쪽)” 이런 장면은 옥정의 재치가 뛰어났다는 사실을 제대로 표현한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좋을 듯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의욕이 너무 앞선 것 아닌가 싶은 대목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과정입니다. 사약을 마시고 숨이 끊어져가는 옥정을 껴안고 울부짖는 장면이나 옥정의 사후 십수년이 지난 다음에 인장리에 있다는 옥정의 무덤을 찾아 옥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신의 처분을 후회하는 장면이야말로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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