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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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번역된 칼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를 통해서만 만나본 강유원님을 저서로는 처음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3쪽)”라고 쓴 첫 만남에서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분이구나 싶습니다. 언제를 기준으로 한 것인지, 책의 기준을 어디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설마 절대 다수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을까요?

 

그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도 평생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만 마주하고 있어 행복하기 때문인 것 맞나요? 그리고 책에 있는 글자가 죽어있는 것 맞나요? 그리고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 것 맞나요? 책을 펼치자마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에 대한 답은 어디에 있나요?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을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음모임에 틀림없다는 단정은 분명한 것일까요? 책을 읽는 이들은 책을 통하여 필요한 것을 얻으면 그만일진대 굳이 타인까지 책읽기에 끌어들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책으로 이익을 얻을 사람들의 음모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저자는 <책과 세계>라는 주제를 통하여 책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기에 나선 모양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가 책에 앞섰다는 전제는 분명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는 주장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그들의 삶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자를 만들고, 문자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인간의식의 분열로 해석하기 보다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자와 문자로 구성되는 컨텍스트를 창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컨텍스트가 모여 텍스트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합니다만, 저자는 “텍스트와 그 텍스트가 생산된 컨텍스트로서의 세계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이제 정확하게 알아낼 도리가 없게 되었다.(5쪽)”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고전에 대한 자극을 주면서 그것들로 직접 다가가는 길을 알려주고, 그 책들을 읽기 전에 그 책들이 어떻게 이어져 있고 대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기 위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설명하는데 한참을 에둘러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첫 장을 세계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를 살피기 위하여 <길가메시 서사시>, <모세 5경>, <사자의 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문자가 인류 최초의 문자기록이 남아 있는 수메르문명의 점토판에서 발견된 것으로 ‘인류 최초의 서사시’라고 알려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꼭 문자로 남겨져있는 것만이 인류 최초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 5경>은 히브리민족의 서사시라고 보는 저자의 견해에 공감합니다. 이집트 파피루스에 기록된 19왕조시대의 <사자의 서>는 그들이 불멸과 영원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는 것인데, 그들의 문명이 무너지면서 그들이 남긴 책은 ‘죽은 책’이 되었다고 단정합니다.

 

이처럼 저자는 수메르문명, 히브리문명, 이집트문명 등 고대문명이 남긴 텍스트에서 시작하여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다윈의 <종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텍스트의 의미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에필로그에 적고 있는 것처럼 ‘극단의 시대’라고 하는 20세기에 등장하는 현실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국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책읽기가 출발점이 되어야 할 터인데, 현실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론을 세우기 위한 책읽기가 필요할 것인가에 의문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冒頭)에서 책읽기를 부정적으로 정의한 이유가 알 듯 모를 듯 합니다. 반쯤 차있는 컵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한다는 비유가 있습니다.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시각과 반이나 남았다는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사정이 있겠습니다만, 저라면 긍정적 사고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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