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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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일상을 벗어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행이야말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싶습니다. <헤세의 여행>을 옮긴 홍성광님은 ‘여행을 통한 공간의 변화는 우리의 정신에 활력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행을 통해 장소가 아닌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얻게 된다.(9쪽)’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통하여 얻은 다양한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기 때문에 글로 남겨놓은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사진을 찍어두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사진만으로는 기억을 되살리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희망의 발견>의 저자 실뱅 테송(Sylvain Tesson)은 “장거리 보행자에게 글이란 가장 강렬한 진정의 순간이다(…). 저녁마다 글을 쓰면서 여행자는 또 다른 표면으로 길을 계속 이어가고 페이지 위에서 전진을 연장한다.(89쪽)”라고 했을 것입니다.

 

여행의 감동을 글로 남기는 작업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뜻은 있으나 엄두를 내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종류의 글 역시 일반적인 글쓰기와 같은 맥락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행에 관한 글을 많이 읽고 따라하다 보면 점점 좋은 글을 남길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데미안> 등으로 우리와 친숙한 헤세는 당시 유럽사회의 유행처럼 많은 여행을 하고 그 느낌을 에세이로 남겼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에세이들을 모아 엮은 <헤세의 여행>은 여행의 느낌을 글로 옮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주로 보는 여행을 하는 저와는 달리 여행에 대한 헤세의 생각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36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헤세는 평소에 만날 수 없는 사람과 사물을 체험함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여행은 어떤 나라와 민족, 어떤 도시나 풍경을 여행자의 정신적 소유물로 만들려는 목적을 지녀야 하기 때문’에 “여행자는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낯선 것에 귀 기울여야 하고, 낯선 것에 담긴 본질의 비밀을 끈질기게 알아내려 노력해야 한다.(41쪽)”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핼 기록을 엮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1901, 1911, 1913), 보덴호 산책(1904),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1911), 테신지역의 소풍(1919~1924). 독일 남쪽 지역의 방랑(1920) 그리고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여행(1927) 등입니다. <싯다르타; http://blog.joins.com/yang412/10451704>에서 헤세가 불교에 매우 심취해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그 배경을 <헤세의 여행>에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리랑카의 석굴불교사원을 찾았을 때의 느낌을 헤세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제 노 승려가 가장 안쪽의 문을 열었다. 그곳은 칠흑 같이 캄캄했고, 뒤쪽의 암석 동굴은 닫혀 있었다. 촛불을 들고 다가가자 어떤 거대한 형체가 불빛과 그림자 속에서 흔들리며 나타났다. (…) 전율이 느껴졌다.(238쪽)” 헤세는 생애의 절반 이상을 인도와 중국연구에 바쳤는데, 헤세가 유럽을 증오하고 도망친 이유는 유럽의 현저한 몰취미, 시끄러운 대목장 영업, 성급한 조바심, 거칠고도 조야한 향락욕 등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뇌와 불안과 절망의 세월이 여러 해 지나는 동안 유럽의 구원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도, 유럽을 적대시하려는 생각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왜? 존경하는 동양과 병들고 고통 받는 유럽 사이의 큰 차이는 사실 헤세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부처와 담만파다, <도덕경>이 고향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순수하게 들렸고, 더 이상 수수께끼 같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만, <헤세의 여행>에 나오는 주옥같은 글 가운데 하나만 뽑으라면 다음 구절로 하겠습니다. “저녁녘엔 호수나 그 뒤편 숲 속의 모래밭, 갈대나 풀밭을 찾아갈 시간이 된다. 호수는 따듯한 혓바닥으로 석양에 물든 모래밭을 핥고 있다. 낚시꾼들이 긴 낚싯대를 여윈 장딴지 위에 올려놓고 꿈꾸듯 개울 어귀에 서 있다. 산들은 저녁의 색조를 띄어가고, 저녁의 금빛 마법이 세상을 넘어간다.…(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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