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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흔적을 찾아서
바바라 해거티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영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신은 존재하는가? 신의 존재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목도 그렇습니다만, ‘생명의 DNA에서 죽음 이후까지, 뇌의 회로에서 우주의 과학까지 신의 존재를 찾아 나선 위대한 탐사’라는 카피에 끌려서 읽게 된 <신의 흔적을 찾아서>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현재까지의 과학적 방법론으로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다’입니다.
저자는 25년 경력의 탐사전문 작가인 바바라 해거티입니다. 과학과 종교의 해묵은 논쟁거리인 신의 존재증명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게 된 것은 저자의 영성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라는 기독교 교파의 가풍에서 자란 저자가 몸살에 걸렸을 때 타이레놀을 복용하여 증상이 호전되면서 종교를 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19세기 말경 미국의 에디 부인이 창립한 기독교의 분파로 죄, 병, 악은 모두 허망하다고 깨달음으로써 만병을 고칠 수 있다는 정신요법을 주장한다고 합니다. 이듬해 저자는 암에 걸려 있는 복음주의자를 인터뷰하면서 영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 몸보다 정신이 먼저 반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 어쩌면 위험이 닥쳤다는 신호가 느껴졌다. 나는 뒷덜미의 머리카락이 쭈볏해지는 걸 느꼈고 심장박동이 좀 빨라졌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지금처럼 말이다. (…) 나는 만질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어떤 존재에 조금씩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휩싸였다. 꼼짝할 수 없었다.(13쪽)” 이런 존재를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영적 경험을 한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이런 사람들에 대한 뇌과학적 연구결과를 뒤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유전자분석과 뇌화학적 분석 그리고 대뇌의 전기적 활동을 연구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임사체험이 등장하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유전학적 연구로 영성이 높은 사람들에서는 VMAT2라는 유전자의 발현빈도가 높더라는 것인데, 이 유전자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라는 뇌활성 전달물질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고 있습니다.
신경과학자 마이클 퍼싱어는 저자가 생각하는 영적 경험의 정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우주의 온전한 존재가 무엇이든 그것을 경험할 때 그건 뇌의 활동이라는 것입니다.(179쪽)” 역사적으로 과학이 성취해온 과정을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코페르니쿠스가 바로 잡았고, 우리가 특별한 창조물이라는 환상은 다윈이 깼고, 프로이트는 우리가 논리적인 동물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렸다고 할 수 있다’라고 요약하면서, 인간이 동물종으로서 극복해야 할 마지막 환상은 바로 ‘신’이 인간의 뇌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존재라는 환상, 즉 우리가 그 존재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신의 존재나 영적 체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겠다고 하면서도 과학적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사례들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열두 살 된 소년이 13센티미터의 작은 망원경으로 토성을 보았다는 기억입니다. 아이들을 위하여 천문대를 방문하였을 깨 꽤나 큰 망원경을 통하여 토성의 고리를 관찰했던 저의 기억과는 거리가 있는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시신경이 손상되어 볼 수 없었던 여성이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누워있는 여자가 자신의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영적체험이 일어났다는 증거, 지문을 남긴다는 걸 과학은 증명해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은 마이클 퍼싱어의 설명으로 충분히 기각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부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 저자가 토마스 쿤이 내놓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