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탄생 살림지식총서 87
전진성 지음 / 살림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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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나라에 있는 박물관도 다 구경해보지 못했습니다만,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으면 그곳에 있는 박물관은 빠트리지 않고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박물관에 가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궁극의 리스트>에서 폴 발레리의 박물관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나는 박물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감탄할 만한 물건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기쁨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 나는 냉동된 피조물들의 소동 속에 들어온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것들은 저마다 헛되이, 나머지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를 요구한다.(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 169쪽)” 하지만 박물관에 대한 발레리의 이런 생각도 나중에는 변하게 된 것 같다는 설명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마침 읽은 전진성교수님의 <박물관의 탄생>은 박물관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박물관(博物館)이라는 한자어에 담긴 의미가 ‘온갖 잡동사니를 펼쳐 놓은 곳’이라고 새겨져 그리스어 무제이온(mouseion)에서 온 ‘museum'의 뜻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무제이온은 학예를 담당하는 아홉 명의 뮤즈(muse)여신들의 전당을 지칭하였기에, museum은 과거의 신성한 지혜와 유산을 일상적 삶의 폐해로부터 보존하는 성소(聖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서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한밤중에 박물관에 모셔진 과거의 존재들이 살아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지만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꾸준하게 이어가다 보면 박물관에 있는 유물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박물관이 그저 ‘박물’관이 아니라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보존하는 동시에 그것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적절한 의미를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곳이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물관의 기원을 보면 기원전 29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설립된 일종의 연구․교육센터였다는데, 뮤즈여신에게 봉헌된 이 기관은 도서관 외에 천체관측소와 다양한 연구 및 교육시설 그리고 모든 분야의 수집품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중세 암흑시대에는 수도원의 보고(寶庫)가 그런 역할을 일부 했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이후 부호와 권력자들이 고대의 예술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종교적 가치보다는 미적 가치를 중시하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박물관 형성의 토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박물관에 대한 개념의 대변혁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는데, 왕족들이 독점해온 수많은 예술품들을 민중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박물관을 설립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부르봉 왕가의 소장품들을 기초로 하고, 루브르궁을 부분적으로 개조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루브르박물관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필두로 하여 19세기에는 유럽의 전역에 박물관이 설립되는데, 1820년 스페인의 프라도 국립박물관이, 1824년 영국의 국립박물관이, 1830년 독일 베를린에 구박물관이 개관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루브르박물관에 가보면 ‘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과 조각 작품 같은 예술작품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18세기부터 본격화된 철학적, 역사적 논의를 통해 미술이 고유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역사를 지닌 최상의 창조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때문인데, 새로운 관념으로 자리 잡은 미술사가 이런 변화를 주도하였다고 합니다. “박물관은 탄생 초기부터 미술사와의 공조관계에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미술사 연구의 도움으로 박물관의 수집과 전시는 보다 전문화될 수 있었으며 박물관의 도움으로 미술사는 학자의 좁은 골방에서 벗어나 제도적인 기반을 얻을 수 있었다(59쪽)”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박물관이 옛것들을 보관하는 장소로 인식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박물관과 그것의 조상 격인 각종 진열공간들은 해당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78쪽)”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따라서 “박물관은 인간 삶의 흔적이 담긴 모든 것을 유물로 삼고 있으며 또한 농촌, 탄광, 공장, 선박, 백화점, 고성 심지어는 감옥에 이르기까지 삶이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형태의 박물관을 볼 수 있게 된 까닭에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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