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우현주 옮김, 김상근 해제 / 살림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EBS 인문학특강] 공개강좌에서 만난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의 김상근교수님은 <마키아벨리; http://blog.joins.com/yang412/13190938>를 통하여 <군주론>에 담은 마키아벨리의 진심이 왜곡되어 힘과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치는 음흉한 참모라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김상근교수님의 주장을 먼저 듣고서 <군주론; http://blog.joins.com/yang412/13452949>을 읽은 탓인지, 군주에게 얄팍한 권모술수가 아닌 정통적인 ‘제왕학’을 설명하는 교과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 생각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 책을 만났습니다. 바로 김상근교수님께서 해제를 붙이신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입니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말년에 학문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을 가르치던 ‘루첼라이 정원’ 모임의 제자이자 후원자였던 피렌체의 젊은 귀족 자노비 부온델몬테와 시인 루이지 알라만니에게 헌정하는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들어가는 글에 보면, “나는 포르투나가 자신의 존재를, 즉 위대한 사람들을 만들어 낸 존재는 지혜가 아닌 바로 포르투나 자신임을 세상에 드러내길 원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믿습니다.(10쪽)”라고 적었습니다. 카스트루초의 삶을 보면 비르투스를 통하여 입신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결국에 마지막 승자는 포르투나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르투스의 덕목으로도 얻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즉 포르투스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르투나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우리의 운명을 지키는 최선의 방책은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여신 앞에서, 모든 인간은 겸손해질 것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김상근교수님의 해제를 읽어보면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됩니다. 마키아벨리가 카스트루초의 생전의 행적에 관한 역사 정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그의 생애를 영웅담의 형식을 꾸몄는데, 사실은 카스트루초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유언을 각색하는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마키아벨리적’이라는 형용사, 즉 ‘사악하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모사꾼’으로 폄하되고 말았는데, 이는 다분히 자업자득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보면 <군주론>의 속편에 해당하는 이 책을 읽다보면 마키아벨리에 대하여 평가되어 내려온 이미지가 크게 잘못된 것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카스트루초를 준주로 세우는데 조력하였지만 공적을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루카의 포조(Poggio)라는 가문의 일원이 카스트루초의 대리인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지만, 사전 준비작업을 철저하게 하지 못하는 바람에 일부 세력들이 반대세력에 서는 등 복잡한 상황으로 치달아 결국은 협상에 의하여 조율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카스트루초는 그의 관대함과 너그러움을 보여줄 것처럼 폭동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을 사면할 것처럼 포고하고는 이 말을 믿고 그의 앞에 나온 이들은 모두 붙잡혀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보다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조작되었거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는 것인데, 아마도 그 이유는 마키아벨리가 세상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즉 ‘인간 일반’에 관한 자신의 성철을 담아내기 위하여 철저한 수학적 계산과 치밀한 작품 계획을 통하여 구성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김상근교수님의 해제를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남을 절대로 신회하지 않고, 공포심을 조장하면서 비르투스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평화의 방법’으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할까? 라는 질문을 던져두고서 이렇레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다.(147쪽) 어떻습니까? 일종의 해탈의 단계에 들어서야 인류를 발전시키는데 공헌할 수 있다는 주장을 곁들이고 있습니다만,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해탈에 이르는 길오 보여서 오히려 책읽는 이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