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를 시사회에서 감상했습니다. 뉴베리상을 수상한 로이스 로리가 발표한 동명의 원작 <더 기버; 기억전달자; http://blog.joins.com/yang412/12811323>를 필립 노이스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겼습니다. 노이스 감독은 원작이 1993년에 된 점을 고려한 듯 디테일에서는 업그레이드된 기술을 일부 적용하였지만, 대사는 물론 스토리까지도 원작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당연히 영화는 제가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표현되는 점은 있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 모두에서 조너스(브렌튼 스웨이스扮)가 주인공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원저자는 왜 ‘기억전달자’를 제목으로 하였을까 지금도 궁금합니다. 이 작품의 뼈대는 이들이 사는 커뮤니티에 관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기억보유자가 다음 세대의 기억보유자에게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기억이 만들어져 저장되는 과정은 과학적으로 많이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경험한 것을 요즈음 말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최초의 방법은 개인별 기억이었을 것입니다. 그 기억을 언어를 통하여 타인과 공유하게 되었고, 문자가 개발된 다음에는 다양한 형태의 기록으로 기억이 다음 세대에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기록은 동굴의 바위와 같이 자연물에 적다가 점토판에 기록하게 되었고, 양피지나 종이에 적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문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바로 구술로 전수되던 개인의 기억이 문자의 형태로 전달할 수 있게 되고, 그 기록이 남아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 첫 번째 계기가 되었고, 수작업을 통하여 문서로 남기던 단계에서 활자를 이용한 자동인쇄술이 개발된 것이 두 번째 계기가 되었으며, 기록이 전자문서화되어 보관과 검색이 용이해지고, 인터넷을 통하여 대용량의 정보를 인류가 공유하게 된 것이 세 번째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기억을 완벽하게 타인에게 넘겨주는 방법은 아직까지도 없지만 상상의 세계에서는 다양한 방법들이 고려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 <다크 시티; http://blog.joins.com/yang412/4495836>에서는 두뇌에서 기억물질을 주사기로 끄집어내어 조작을 가한 다음에 다시 주사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바꾸기도 하는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아직 가능하지 않습니다. <더 기버; 기억전달자>에서는 기억전달자가 차세대 기억보유자에게 신체적 접촉을 통하여 기억을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기술입니다.

 

 

<더 기버; 기억전달자>는 마치 흑백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사는 커뮤니티는 세상과 단절되어 있고, 기후까지도 통제되는 회색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개인의 감정까지도 통제되고 가족까지도 인위적으로 구성되는데 아이는 남녀의 사랑의 결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산모라는 직위를 가진 사람이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면 그 아이를 적절한 가정에 배정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이 커뮤니티에는 ‘임무해제’라는 독특한 절차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아기, 맡은 직위를 포기하는 젊은이, 그리고 맡은 업무를 모두 마친 노인들에게 적용되는 절차입니다. 그리고 그 절차를 수행하는 사람은 정해진 것처럼 혈관주사를 통하여 그 사람의 생명을 끝내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살게 된 것은 개인의 욕심으로 인하여 끔찍한 전쟁 끝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전쟁이 없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선택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무해제’라는 미명아래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일에 무심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변화가 없는 세상은 발전이 없고, 결국은 퇴화되기 마련이 아닐까요? 회색빛으로 뒤덮인 이들의 세상이 유토피아일까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생략한 표현들은 원작을 통해서 새겨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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