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서재 - 길에서도 쉬지 않는 책읽기
이권우 지음 / 동녘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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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성격이 모호한 듯합니다. 제목을 보면 여행에세이인 듯하지만, 막상 읽다보면 여행기를 적은 책을 읽은 느낌을 적은 북칼럼집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행자의 서재’라는 제목이나 ‘길에서도 쉬지 않는 책읽기’라는 부제가 적절한가 싶습니다. ‘책을 따라 떠나는 여행기’ 정도가 안성맞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도 요즘 여행기 읽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책 또한 그런 이유로 읽게 된 것입니다. 오래전 메모해두었던 북미 여행기록을 바탕으로 유기(遊記)를 써보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여행기에 탐닉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지금-이곳을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이 저를 여행기로 이끈 듯합니다. 짐 챙기는 사람이 그러하듯, 책장을 넘기며 저는 중력의 법칙에 묶여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상상하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24권의 여행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들을 네 개의 영역으로 분류했습니다. 그 영역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영역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1장 국경을 빠져나오자 여행이 시작됐다, 2장 걷는 길 위에 고독과 행복이 동시에 있다, 3장 사람들 속에서 내 청춘의 길을 찾다, 4장 장막을 걷어라, 창문을 열어라, 등입니다. 제목이 문학적이라고 해야 할지 현학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4권의 책 가운데 제가 읽어본 책은 3권에 불과해서 저자의 생각과 저의 느낌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은 아쉽습니다만, 좋은 책을 소개받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 셋>입니다. 기왕의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틀에 박힌 형식을 버리고,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지, 타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윤리 감각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지 끊임없이 사유할 거리들을 독자들에게 던지는 방식으로 적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자의 서재>의 저자는 윤여일이 <여행의 사고 셋>에서 적고 있는 번역에 관한 생각을 인용하면서, 번역을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 여행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겪고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를 언어로 옮기는 일은 상당히 지난하고 위험하다. 자칫 여행기가 감상의 범람으로 넘치고 마는 일이 벌어진다. 진짜 여행기는 ‘금욕’의 수사학이어야 한다. 함부로 말하지 않되, 그곳의 활력을 전하는 글은 쓰기 어렵다 더욱이 해석하는 대목에서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번역만큼 어려운 것이 여행기 쓰기란 말이다.(37쪽)” 이권우와 윤여일의 여행기에 대한 정의를 읽고 나서는 유기를 써보겠다는 생각을 크게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마다의 느낌이 다르고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도 다르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으면서 느낀 점입니다. 물론 읽으면서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도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오소희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에 대한 글에서 저자는 어리다 못해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는 외국인을 보면서 그들의 여행태도를 높이 평가했다는 누군가의 글을 인용하면서 어렸을 때 두루 보고 듣게 해주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아이가 살아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쓰려고 하는 유기에 등장하게 될 우리 아이들은 저와 함께 여행을 할 무렵에 초등학교 저학년, 그리고 네 살 정도 되었는데, 두 아이 모두 북미대륙을 종단하고, 횡단한 여행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소희는 세 살 박이와 단 둘이서 터키를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초등학교의 고학년은 되어야 보고 들은 것에 대한 기억을 분명하게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 더, “희한한 여행기다. 처음 가본 곳의 풍경이나 유물에 대한 넋두리는 절제되어 있다. 대신, 그곳에 가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책을 읽어 머리 안 이야기와, 가서 들은 이야기로 범벅되었다.(180쪽)” 제가 최근에 읽은 김별의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 http://blog.joins.com/yang412/13465682>이 딱 이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페인 여행에 대한 정보가 아쉬웠던 까닭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 시리즈의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기왕의 여행서들은 단순 가이드북이거나 관광 명소를 좇으며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간략히 소개하고 지은이의 감상을 곁들이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나아가서 인문학 여행기라고 해보아도 작가의 인문학적 지식을 곁들이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저자의 특화된 책읽기와 여기에서 얻은 느낌을 정리하고 있는 점은 분명 무언가 제가 남기는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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