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마다 전주의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다니다 보니, 생각은 굴뚝같지만 시청할 수 없는 KBS1TV의 [TV 책을 보다]입니다. 이번 주에는 다산책방에서 나온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http://blog.joins.com/yang412/12623266>를 다룬다고 해서 면회일정을 바꾸어 시청하기로 하였습니다.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다산북카페 나나흰의 카페지기의 요청이 있기도 했지만, 줄리안 반스를 인터뷰한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이 출간되자 바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기억의 왜곡을 다루고 있어 특히 관심이 컸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기억과 윤리의 ‘심리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 곳곳에 숨겨있는 복선들이 치밀하게 교차하고, 결말부분에 가서는 놀라운 반전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야기를 요약하는 일은 이 책을 읽을 생각을 가지고 계신 독자들에게 대한 예의가 아닐 듯 싶어 이글에서도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억의 왜곡에 중점을 두고 읽었어야 할 저는 오히려 젊은 시절 토니가 해서는 안될 짓, 즉 헤어진 애인이 절친과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발끈해서 저주에 가까운 편지를 보낸 일이 젊었기 때문에 저지른 헤프닝으로 치부한 것을 후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고서 기억에서 지워버린 토니의 심리를 천착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방영된 [TV 책을 보다]에는 좋은연애연구소의 김지윤소장께서 작

품을 소개하였고, 소설가 최민석님, 영화평론가 김봉식님 그리고 정신과 전문의 박용석 선생님이 출연하여 작품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미 비포 유>를 다룰 때 만났던 김솔희 아나운서님은 여전히 아름다우시네요(http://blog.joins.com/yang412/13382668). 오늘 [TV 책을 보다]에서는 기억의 왜곡보다는 남녀의 관계에 중점을 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기억능력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라고 한다면 기억을 잊는 망각능력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고 들은 것을 모조리 기억해야 한다면 아마도 인간의 평균수명은 절대로 늘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작가 줄리언 반스의 인터뷰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다란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작업실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혹시 KBS에서 방문한다고 해서 정리한 것일까요?)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전동타자기를 독수리타법으로 쳐서 원고를 쓰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친근하면서도, 지금은 아련하게 사라져버린 타자기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게 만듭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에이드리언은 작가의 친구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옥스퍼드에 진학한 작가와는 달리 케임브리지에 진학하면서 소식이 끊겼던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작품에 힌트가 되었다고 하니, 작가와 친구 사이에 삼각관계(?)하는 상상이 날개를 펼치게 됩니다.

 

에이드리언이 자주 인용했다는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34쪽)”라는 말을 했다는 프랑스 사람 파트리크 라그랑주는 헛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프랑스어에서 탄생한 가상의 인물이라고 합니다. 역시 헛간라는 의미가 담긴 작가의 이름에서 나온 아이디어 같습니다.

 

방송을 보고 난 느낌은 아무래도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다시 읽어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는 기억의 문제 이외에도 인간의 조건과 자유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고 해서입니다. 옮긴이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삶은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다. 우연의 연속 안에서 인간이 실제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줄리언 반스 지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265쪽)” 아무리 목적의식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것은 개인의 의지로 가능한 것 아닐까요?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바로 다시 첫 장으로 되돌아갔다.”라고 한 조선일보의 어수웅기자의 말 때문이었는지, 그냥 덮어 둔 책을 다시 읽어볼 생각이 들었던 것은 마지막 반전의 힌트를 확인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진실을 다시 느껴보기 위함이라고 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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