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드리언 몰의 비밀일기 1 - 13과 3/4살
수 타운센드 지음, 김한결 옮김 / 놀(다산북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제가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때가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열네 살 때였습니다. 영국 작가 수 타운센트의 성장소설 <에이드리언 몰의 비밀일기>의 주인공이 비밀일기를 적기 시작할 무렵의 나이, 열세 살 무렵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없애버렸기 때문에 다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 무렵 제가 일기에 적던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물론 주인공이 사는 곳이 영국의 시골이고 시대적 배경 역시 1981년과 82년이기 때문에 제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1967년과는 여러 면에서 비교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가족들 사이의 묘한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에이드리언처럼 적나라하게 적을 용기까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즉, 비밀일기라고는 하지만 만의 하나 누군가가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관점은 이젠 아이들이 모두 장성하였습니다만, 제 아이들이 저를 어떻게 보았을까 뒤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혹여는 부끄럽게 보였을 부분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가슴이 뜨끔한 책읽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에이드리언 몰의 비밀일기> 첫 번째 이야기는 열세 살이 되던 해의 1월 1일부터 시작해서 겨울, 봄, 여름, 가을이 지나서 다시 이듬해 1월부터 3월까지의 겨울 이야기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또래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책읽기와 시작이 취미생활이고, 집안일 역시 똑 소리 나게 하는 주인공은 스스로를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애늙은이면서도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습니다. 그 나이도 저도 그랬을까 싶도록 조숙한 면도 있어 아이들을 잘 지켜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첫 번째로 비밀일기에 적은 에이드리언의 독서목록입니다. 1.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2. 동물농장(조지 오웰), 3. 마담 보바리(플뢰베르), 4.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 5.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조지 엘리엇), 6. 어려운 시절(찰스 디킨스), 7. 톰 아저씨의 오두막(마크 트웨인), 8. 섹스에 대한 진실(A.P.G. 헤이그), 9. 아동기로부터의 탈출(존 홀트), 10. 글렌코(존 프레볼), 11.진보, 공존, 지적인 자유(안드레이 사하로프), 12. 엘리스 같은 도시(네빌 슈트), 13. 죄와 벌(도스토엡스키), 14. 아이들은 왜 실패하는가(존 홀트) 등입니다. 열네 번째 책은 열네 살이 되던 해 겨울에 읽은 유일한 책입니다. 따라서 열세 살 때 모두 13권의 책을 읽었는데, 책의 제목만을 보아서도 그 나이에 쉽지 않은 독서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열세 살짜리가 읽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인데, 책을 읽은 느낌을 구체적으로 적은 경우는 드물지만 나름대로 판단해보면 핵심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경험을 담아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실제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어린 시절 읽은 책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아이들 같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책들도 포함하고 있어서, 유럽사회에서 아이들 독서지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부분에 등장하는 에이드리언의 창작 시도 그렇지만,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수필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봄」이라는 제목의 수필입니다. “나무들은 싹을 틔우고, 그중 일부는 잎이 되었다. 나뭇가지는 술에 취한 허수아비처럼 하늘 높이 두 팔을 뻗는다. 몸통을 비틀고 꼬며 땅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 거대한 뿌리를 이룬다. 청명한 하늘은 결혼식장 문 앞에서 주저하는 신부처럼 불안하게 맴돈다. 새들은 술에 취한 허수아비처럼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며 솜뭉치 같은 구름 속으로 날아든다. 반투명한 시냇물이 그 여정의 끝을 향해 장엄하게 흐른다. ‘바다로!’라고 외친다. ‘바다로!’라고 끝없이 외친다.(…)(318쪽)” 어떻습니까? 놀랍지 않습니까?

 

작가는 소년의 시각으로 본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비판하고 풍자하는데 무게를 두었다고 합니다만, 먼 나라 한국의 나이 먹은 독자는 또래 아이의 웃자람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고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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