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유산기 - 산림정책과 산림문화 역사성 규명을 위한 산림역사 자료 연구총서 1
국립수목원 엮음, 전병철 외 옮김, 정민호 외 / 한국학술정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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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수목원에서 산림역사 자료 연구총서 시리즈로, 선조들이 남긴 유산기를 국역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는 ‘산림정책과 산림문화의 역사성 규명을 위한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듯합니다만, 그 목표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유산기(遊山記)는 유기(遊記)의 일종으로 산을 구경한 느낌을 적은 기록인 것입니다. 울진삼수기를 남긴 김창흡이 유기(遊記)를 남기는 것은 “글을 써서 기록해 와유(臥遊)에 보탬이 되는 자료로 삼는다(134쪽)”라고 적은 것처럼 훗날 유기를 다시 읽으면서 여행의 감흥을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만일 오늘의 면려에 미치지 못한다면 장차 향인을 면치 못하고 다 사라지고 민몰되어 초목과 다를 게 없으리니 어찌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94쪽)”라면서 스스로를 독려하기 위하여 유기를 남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국역 유산기>에는 조선의 문인들이 남긴 170여편의 유산기 가운데 경상북도에 있는 산을 다룬 23편을 골라 국역하고 있습니다.

 

국립수목원 신준환원장님이 남긴 발간사의 한 대목입니다. “유산기는 말 그대로 산수 간을 노닌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유교문화와 산림문화의 오묘한 만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산수유기를 통해 주체의 관찰과 행위를 알 수 있으며, 자연 앞에 인간의 왜소함을 돌아보는 겸허를 배웁니다. 솜씨 좋은 사진을 보듯 펼쳐지는 장관이며, 꼼꼼하고 치밀한 선인들의 기록정신, 봉우리의 유래와 산비탈의 모습과 능선의 굴곡이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1924년 전인미답의 곳인 에베레스트 정상을 600미터 남기고 실종된 조지 말로리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필라델피아에서 가진 강연에서 ‘당신은 왜 위험하고 힘들며 죽을 지도 모르는 산에 갑니까?’'라는 한 부인의 질문에 ‘산이 그곳에 있으니까요(Because it is there.)’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주자(朱子)는 “산을 감상하고 물을 완상화는 것도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放心]이다.”라고 하셨고, 공자께서는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智者)는 물을 좋아한다.”라고 하셨다고 하는데, 사람마다 산에 가는 이유가 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어땠을까요? 조선 후기 문신 박장원은 “무릇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답답한 심사를 펴는 것은 진실로 또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평소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유폐를 당한 경우에 있어서이겠는가(박장원, 보상망창산기, 97쪽)”라고 산에 오르고 싶어 하는 선비의 마음을 설파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연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가파른 산길을 올려다본 후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쉬지 않는 것을 공부로 삼았다. 이 몸이 점점 높아져 원근의 여러 봉우리들이 이미 눈 아래에 떨어져 있는 것을 휘익 돌아보았다. 우리가 학문을 하는 것도 이와 유사하리라. 처음에는 힘들어서 발꿈치를 붙이고 있기가 매우 어렵지만 한결같은 뜻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물러나지 않는다면, 끝내 반드시 도달하는 곳이 있을 것이다.(허훈, 유금오산기, 204쪽)” 그래서 선비는 산에 올라서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가 봅니다.

 

유산기의 형식도 필자마다 독특해서 소략하게 산행을 기록한 경우도 적지 않는 반면, 장현광은 주왕산록에서 산천의 기이한 형상을 고서에서 읽은 내용을 빗대어 서술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김창흡이 남긴 울진산수기를 보면, “대체로 산의 형세는 사람이 서 있는 듯하기도 하고 병풍이 둘러쳐져 있는 듯하기도 하며, 창검 모양으로 빙 두르며 성처럼 푸르게 솟아 있어 마치 연꽃이 우뚝 솟아오른 듯하기도 했다.(129쪽)”라고 현란한 묘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권정침은 소백유록에 험지에서 땅을 일구는 농부들의 수고를 기록하고, 사력을 다해 벼랑을 오르는 과정을 ‘한 치 나아갔다 한 자 물러나니, 거의 우리가 학문을 할 때 깊은 성찰을 일으키는 과정과 같았다.(141쪽)’라고 적어 산천경계의 유람을 넘서 삶의 애환과 학문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장복추가 금오산유록에 남긴 “험한 곳에 오르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급하지도 말고 느리지도 말아야 한다. 급하면 피로해지기 쉽고 느리면 도달하기 어려우니,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항상 부족한 듯이 여긴다면 뒤를 돌아보면 점차 멀어질 것이고 앞을 바라보면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168쪽)”라는 구절은 오늘날에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경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선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산을 대하였는지 오늘에 살펴 살아가는 지혜로 삼을 내용이 풍부한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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