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살림지식총서 136
강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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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사전에서 ‘금기(禁忌)’란 민간신앙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일상생활이나 종교적 의례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접촉이나 언행을 제한하는 관습”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기는 사회적으로 전승되면서 그 사회 속에 깊이 뿌리내려 일종의 속신(俗信)으로 자리 잡았다. 금기가 끈질기게 전승되는 이유는 금기를 범하면 해당 신령의 노여움을 사 벌을 받거나 재앙을 받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금기란 단어의 용례가 확대되면서 어떤 집단에서 기피하는 말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는데, 이 경우는 그 집단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이 재앙을 내리는 신령의 역할을 대신하여 금기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집단이나 금기가 있는 것처럼 학계 역시 금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는데,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먼저 나서서 금기를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에서 방울을 달겠다고 나선 저자 역시 학계에 속한 분이 아니라 학계의 소식을 다루는 기자입니다. 결국 금기를 공론화하지는 않지만 끼리끼리는 주고받는 무엇이 있었던 것이고, 저자 자신은 단지 이것들을 묶어서 책으로 엮어냈다는 설명입니다. 다른 영역은 차치하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학계의 금기는 학계의 ‘구조적인 한계’와 ‘무의식’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 학문이 미세하게 쪼개지고 전문화되고 있어 학계 나름대로의 독특한 금기를 모두 수집해서 다룰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총론에 해당하는 몇 가지와 아마 저자에게 친숙한 각론에 해당하는 몇 가지의 사례를 들어 학계의 금기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승 비판이나 전공불가침의 법칙, 혹은 학문의 주제와 같은 총론적인 문제제기 같은 경우는 쉽지 않은 일이나 생각에 따라서는 옳지 않은 점에 눈을 감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것이며,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공감할 수 있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논문의 형식이나 생태학계의 비생태성과 같은 주제는 각론에 해당하지만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서 공감 여부를 표시하기가 어려워 다만 참고할 따름입니다.

 

문화비평에 ‘문화’와 ‘비평’이 없다는 글에서는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분야라서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글쓰기에는 ‘문화비평’만큼 그 정체성이 흙탕물인 분야도 드물다. 글 좀 쓴다는 이들이 모두 문화비평을 쓰고 있다.(71쪽)”라는 글머리에 이어지는 “이 많은 문화 비평가들이 쏟아내는 글들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비평으로서의 정체성을 전혀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비평이라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전문성’이 ‘제로’에 가까운 글들이 많으며, 약간의 새로운 시각과 글맛을 내는 에세이들이 대부분이다.(72쪽)” 는 공감하기에 충분합니다. 간혹 새롭다는 느낌이 드는 글을 읽다가도 느닷없이 논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념적 주장을 섞어넣는 바람에 글쓴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 논객의 하나라고 하는 분에 대한 날세운 비판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진중권은 글쓰기를 이원화시키고 있다. 겉으로는 문화 비평과 정치 비평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미학적 글쓰기와 정치 비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정치 비평이 문화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급진 좌파적 당파성을 띤 상대방에 대한 논리적 공격이 주조를 이룬다. 그는 과연 문화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일까?(74쪽)”

 

지나친 전문주의와 엘리트주의는 삶과 학문을 결별시켜 별개의 것으로 만들어왔다고 전제한 저자는 대중적 글쓰기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저의 전공분야를 쉽게 풀어 일반에게 소개하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낙담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도 “대중적 글쓰기란 어려운 전문 용어와 한자, 논리의 구조물을 해체해서 우리말 속에 생각이 잘 용해된 쉬운 글, 독특한 예시와 문체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글쓰기를 의미한다.(79쪽)”라는 정의에 따라서 쉬운 우리말을 더 많이 발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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