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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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 책장에서 집어든 책입니다. 책장을 열었다가 시나브로 잊어버리기를 몇 차례 하다가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고 나서도 손에 잡히는 무엇이 없다는 생각에 황당하기만 합니다. 「변신」과 「시골의사」가 표제에 나와있기는 합니다만, 카프카의 중·단편소설과 엽편(葉片)소설까지 32편의 작품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들 가운데는 고 추송웅씨가 처음 모노드라마라는 형식으로 무대에 올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학술원에의 보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표제작이라서인지 「변신」과 「시골의사」에 관심이 더 가는 것 같습니다.

 

변신은 ‘몸의 모양이나 성격, 태도 등을 바꿈’이라고 설명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변신」이라고 번역되는 카프카의 작품 「Die Verwandlung」에서는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처럼 변한 경우는 변신의 수준을 넘어서 변태라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변태(metamorphosis)는 성체(成體)와는 모양이나 기관, 생태가 전혀 다른 유생(幼生)의 시기를 거치는 동물이 유생에서 성체로 변하는 과정을 말하는 생물학적 용어입니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는 과정이나 배추벌레가 배추흰나비로 변하는 과정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순간을 카프카는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角質)로 나뉘어진 불룩한 갈색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의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9쪽)” 아마도 얼굴은 변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가족들이 잠자를 알아본 것을 보면 말입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인공은 평소처럼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더 걱정하고 있는 듯해서 읽어가면서도 착잡해지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즉, 변한 모습에 가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지는 가족들에게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우선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주인공의 변신을 걱정해주기는 합니다만, 그 배경에는 당장 빚을 청산하기 위하여 주인공이 일터에 나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우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도 어머니와 여동생은 주인공의 비극적 상황을 걱정하는 듯하지만, 아버지는 조금 더 냉정하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아버지가 내던진 사과에 맞아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주인공이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무의식을 갑충으로 변신하는 것으로 표현하였지만, 결국은 기대했던 가족의 보호나 이해는커녕 냉대와 폭력으로 되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20세기 초반의 작품이지만 작금의 사회현상을 예견한 듯 하여 섬뜩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가족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시골의사」는 우리 사회에서는 벌써 오래 전에 사라진 의사들의 왕진을 소재로 한 것으로 보여 많이 생소한 느낌이 듭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날 10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는 중환자를 보러 왕진을 떠나야 하는 의사는 어제 말이 죽어버려 움직일 수 없는 빈 마차에 맬 말을 구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남자가 두 마리의 말을 제공하여 일단 출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남자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하녀를 남기로 왕진을 떠나야 하는 상황과 막상 왕진을 요청한 환자는 치료해서 생명을 구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결국 이 시골의사는 자신이 해줄 것이 없는 상황, 그리고 하녀 역시 자신이 어찌해줄 수 없는 상황 등에서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변신」이외에도 「굴」, 「학술원에의 보고」 등, 인간의 삶을 다른 생물의 그것과 비교한 작품들을 보면서 인간의 어두운 면을 천착하는 작가 나름대로의 특별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그냥 여기를 떠난다. (…) 그것이 나의 목표이니라. (…) 여행이 워낙 길 터이니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한다면, 나는 필경 굶어죽고 말 것이다.(176쪽)”라고 한 「돌연한 출발」이나, “내가 집으롷 돌아왔다. (…) 누가 나를 맞아줄 것인가?”라고 묻다가 갑작스레 “그대는 아늑한가, 집에 있는 양 느껴지는가?”라고 묻는 것는 「귀가」 역시 종잡기가 어려운 책읽기입니다. 아무래도 읽지 않은 척 던져 두었다가 다시 읽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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