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과학의 철학 - 신경 과학의 철학적 문제와 분석
맥스웰 R. 베넷 외 지음, 이을상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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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음을 맞는 순간 영혼은 육체를 이탈하여 영계로 들어가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뇌와 의식의 작용을 연구해온 신경외과의사도 갑작스러운 뇌사상태를 경험하고서, “나는 죽었지만, 영혼은 살아있었다!”라고 주장하여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이븐 알렉산더 지음, 나는 천국을 보았다, 김영사, 2013년; http://blog.joins.com/yang412/13145530)

 

그런가 하면 1907년 미국의사 던컨 맥두걸은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는 실험의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에게 영혼이 존재하고 죽음을 맞는 순간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간다고 한다면,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서 사망 전후의 체중 차이가 바로 영혼의 무게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하여 이를 증명해보려 한 것입니다. 그는 설득에 넘어간 다섯 명의 중증폐결핵 환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에 이릅니다. g 단위 까지 측정이 가능한 초대형 정밀 저울 위에 침대 째 올려놓고 임종을 맞은 환자들의 체중변화를 측정하는 방식을 사용하였습니다. 체중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여 보정하였지만, 마지막까지 설명할 수 없는 값 21그램이 남았다는 것이고, 이 값이 영혼의 무게라고 발표한 것입니다. 21그램은 아무리 마른 폐결핵환자라고 해도 전체 체중과 비교해보면 아주 작은 값으로 계측오류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수치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원론에서 출발한 영혼의 존재는 신경과학의 연구결과 영혼의 역할, 즉 의식은 뇌의 활동결과라는 설명과 함께 부정되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의식 혹은 마음이 뇌의 활동결과라기 보다는 인간 전체의 속성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생리학자이자 권위 있는 뇌과학 연구자인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대학교의 맥스웰 베넷 교수와 인지 철학자인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피터 마이클 스티븐 해커 교수가 그 주장의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이 쓴 <신경과학의 철학>은 최근까지 인지신경과학 분야의 연구에 바탕이 되고 있는 몸과 마음 혹은 마음과 뇌라는 데카르트식 구분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전제로 자신들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발전에 접근하는 첫 걸음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말입니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이 책은 인지 신경과학의 개념적 토대, 즉 인간의 인지적, 정서적, 의지적 능력의 신경적 기반을 탐구하는 것에 수반되는 심리학적 개념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로 이루어진 토대에 관한 고찰’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 인지신경과학이 이룬 연구성과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쟁의 여지가 많을 듯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주장이 불러올 논쟁을 통하여 새로운 연구방향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잘 요약한 이 책의 얼개를 소개합니다. “베넷과 해커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대니얼 데닛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을 검증하고 반박하면서 신경 과학의 철학적 토대를 보여 주고 있다. 1부 「신경 과학의 철학적 문제: 역사와 개념의 근간」에서는 신경 과학에서 다뤄지는 철학적 문제들을 개괄하고 2부 「인간의 능력과 현대 신경 과학: 분석」에서는 인간의 심리학적 능력을 설명하는 신경 과학적 태도를 비판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감각, 지각, 인지, 사고, 정서, 의지 작용과 관련해 신경 과학이 범한 개념적 혼동을 조명한다. 3부 「의식과 현대 신경 과학: 분석」에서는 의식에 대한 신경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견해를 비교, 분석하고 있다. 4부 「방법에 관해」는 신경 과학에서 사용하는 철학적 방법에 관한 것으로 환원주의와 방법론적 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 저자들이 영혼에 대한 데카르트적 해석이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데카르트는 영혼을 생명의 원리가 아닌 사고 혹은 의식의 원리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즉 영혼을 마음의 본질적 기능이 아니라 몸의 기능으로 해석한 것인데, 이로써 동물 생명의 모든 중요한 기능은 기계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마음과 몸을 별개의 두 실체로 보았고, 각각의 본질적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내밀하게 결합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데카르트에서 거슬러 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자연물의 형상으로서의 프시케(Psyche)로 환원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때까지 ‘호흡’이나 ‘목숨’을 의미하던 ‘프시케’에 “각각의 생물에 활기를 불어넣는 생명의 원리”라는 의미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프시케를 ‘마음’이라고 옮기는 것은 잘못이라고 합니다. 마음과 심적능력은 모든 형태의 생물을 특징짓는 성장, 영양섭취, 생식 등과 연합하지 않는 개념인데 반하여 프시케는 이와 연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프시케는 ‘영혼’으로 옮길 수 있지만 생물학적 개념이지 종교나 윤리적 개념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특수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지각하는 과정을 해석함에 있어 저자들은 기존의 신경과학자들과 견해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외부의 자극은 감각기관을 가지고 느끼는 것이지 뇌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감각기관은 외부로부터의 정보가 들어오는 통로에 불과한 것이지, 그 정보를 분석하고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와 대조하여 특정하는 작업은 뇌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막 태어난 어린 생명은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감각기관을 통하여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정보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앞서 경험한 사람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학습이 이루어진 다음에서야 비로소 정보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뇌가 정보에 기초하여 작동하거나 정보의 조각을 연합시킬 수 없다(288쪽)’라고 단정하면서 뇌가 정보를 정보 이론적 의미에서 ‘연합’시키는지 어떤지는 여전히 의문이고,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고 한 발 물러서고는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과학이 이러한 과정의 마지막 부분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체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저자들은 뇌라는 특정 장소가 인식과 연관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면서 신경과학자들이 피해야 할 세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정보’, 정보 처리과정‘과 같은 용어의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둘째로, 지각과정을 설명하는 노력 속에서 전체-부분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유의해야만 한다. 셋째로 2차 성질이 객관적인지 아닌지를 묻는 물음을 당연히 비껴가야만 할 것이고, 무엇을 본다는 것이 그 사물의 이미지를 가지는 것이라거나 그 사물의 이미지를 보는 것임을 포함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297쪽) 저자들은 인간의 의식이란 뇌의 활동결과라는 신경과학자들의 견해를 “신경과학에서 ‘전체-부분의 오류’라고 부르는 특별한 예”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전체-부분의 오류란 동물 전체에 속한다고 생각할 때만 유의미한 속성을 뇌, 즉 동물의 한 부분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리킨다.(467쪽)”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의식이 왜 뇌가 아니라 전체에 속하는 속성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근거가 분명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지과학자 존슨 레어드가 “의식이 무엇인지, 또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지 여부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이라든지, 철학자 데이비드 존 차머스가 의식에 대하여 “우리가 무지한 것이 ‘우주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뚜렷한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도 인간 의식의 본성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들은 “우리가 커피향이 신선하고 풍부하며 향기롭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갓 볶은 커피의 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564쪽)”라고 하면서 경험대상의 성질들이 기술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반론을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마신 커피의 향으로부터 갓볶은 커피라는 사실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요?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홍차를 곁들인 마들렌과자 한쪽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면서 탄생하였음을 암시한 바 있습니다.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본다. (…) 분명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팔딱거리는 것은 그 맛과 연결되어 맛의 뒤를 따라 내게로까지 올라오려고 애쓰는 이미지, 시각적인 추억임에 틀림없다.(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 스완네 집 쪽으로(1): 85~89쪽, 민음사, 2012;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은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어떤 경험을 한다는 것이 무엇과 같은지 알 수 없다는 것은 혼동된 생각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들은 신경과학이론은 철학적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아직까지도 미지의 영역이 많은 신경과학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과학이 철학의 영역에 속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철학은 과학이 아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과학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철학자는 존재하는 일체의 전체성에 관심을 가지고 전체성 속에서 각 사물의 위치, 역할, 지위와 같은 각 사물이 다른 사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 양상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철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2006년; http://blog.joins.com/yang412/13110144)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은 정확한 추론을 통해 성취된 지식과, 동시에 사실에 대한 감각적 관찰에 의해 확증되는 종류의 인식으로 발전하면서 철학으로부터 독립해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은 점이 많다는 이유로 인지에 관한 사항이 철학적 영역에 속한다는 생각이 옳다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경과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철학적 방법론을 논하면서 저자들은 심리철학의 입지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논증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신경심리학이 심리학적 개념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심리학적 개념은 과학적 목적을 위해 고안된 이론적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한편으로는 철학에 대한 신경과학자들의 인식, 예를 들면, 철학이 신경과학의 관심사에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거나, 철학의 선험적인 방법은 마음의 본성에 대한 철학의 탐구를 무가치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거나, 그동안 철학이 성취한 것이 보잘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철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인지신경과학자들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등의 것에 대하여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의식이 과학적인 주제로 취급될 수 있고, 의식이 철학의 독점적인 분야로만 생각되지 않는다.(779쪽)”라고 한 에덜먼과 토노니의 말은 앞서도 잠깐 말씀드렸던 것처럼 과학적으로 입증되기 않고 있다는 이유로 철학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의식에 대한 영역다툼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은 철학이 신경과학에 기여한 공로로, 철학은 어떤 경우에 의미의 경계를 넘어서는지 지적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기억이 과거의 경험의 재현이라거나 언제나 과거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혼돈에 대해 경고할 수 있다거나, 조건반사가 기억의 형태가 아닌 이유와 기억이 뇌에 저장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다거나 하는 등입니다. 그리고 “철학적 분석에 대한 개념적 명료화는 신경과학의 목표와는 무관하다는 생각과는 달리, 신경과학의 목표를 성취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다.(793쪽)”라고 조언하였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인용하면서 조목조목 따진 저자들의 주장들 가운데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철학적 사유가 신경과학의 연구방법론에 새로운 길을 안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신경과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하시는 분들께 학제간 통섭적 사고를 위해서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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