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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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번째 에피소드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는 ‘기억’을 화두로 콩브레에서 보낸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데, 사실은 작가의 바탕이 되는 화자의 책읽기에 관한 대목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화자가 인용하고 있는 라신, 상드, 지드, 심지어는 가공의 인물인 베르고트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관하여는 유예진교수님의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http://blog.joins.com/yang412/3111784>에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에서도 라신을 비롯하여 뮈세 등의 작품들을 인용하여 분위기를 띄우거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끌어다가 비유하기도 하는 등, 화자의 독서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합니다.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의 전반에서 화자의 문학적 스승 베르고트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화자의 첫사랑 질베르트와의 짧은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후반에서는 화자의 문학적 사유의 깊이를 더해주는 예술적 스승 엘스티르 그리고 화자의 생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친구 생루와의 만남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엘스티르가 중매쟁이 역할을 하게 되는 화자의 운명의 여인 알베르틴과의 만남을 그리고 있습니다. 질베르트와 알베르틴은 대조적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의 차이도 그렇고, 첫만남에서 화자에게 주는 느낌의 정도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질베르트와의 관계는 첫만남에서 불꽃이 당겨져서 화르르 타올랐다고 스러지는 그런 사랑이었다고 하면, 알베르틴은 한 무리의 소녀들 틈에서 조금씩 감정이 깊어지는 그런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질베르트와의 이별이 주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하여 떠난 여행이었을 것입니다만, 사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처럼 발베크에서 만난 재기발랄한 소녀들 가운데는 알베르틴 보다 화자와 잘 어울리는 소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베르틴 역시 처음에는 화자에게 거리를 두면서도 사랑을 표시하는 등 애매한 상황을 반복하는데, 운명의 실타래는 어쩔 수 없이 엮어들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알베르틴을 만나기 시작할 무렵의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 모임에 오기 전에도 알베르틴은 내게 미지의 인물이자 거의 식별할 수조차 없던, 그저 지나는 길에 스친 여인, 그래서 우리 삶을 오랫동안 사로잡게 될 그런 유일한 환영은 아니었다.(381쪽)” 그러면서도 알베르틴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한 존재의 얼굴 전면에 배열된 장점과 결점은 우리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면, 완전히 다른 구성에 따라 배열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데, 이는 마치 도시에서 단 하나의 선에서 보면 무질서하게 흩어진 듯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기념물들이 세로로 배열되고 그 상대적 크기도 맞바꾸는 것 같다.(382쪽)” 옮긴이는 알베르틴의 성격에 대하여 디오니소스 신이 상징하는 쾌락과, 자전거와 골프가 상징하는 현대성을 동시에 구현하며 동성애적인 성향을 암시하고 있다고 각주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콩브레의 전원풍경을 꼼꼼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라거나, 발베크의 바닷가 풍경을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내는 솜씨를 보면 엘스티르와의 만남은 화자의 글쓰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들어서면 많은 미술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유예진교수님의 <프루스트가 사랑한 화가들>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화자가 인용하고 있는 화가와 그들의 작품들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읽고서 화자가 인용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구할 수 있는 데까지 구해서 읽어본 것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으면서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화자가 할머니와 함께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발베크에 이르는 여정도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열차에서 맞는 아침을 묘사하는 장면도 대단합니다. “나는 진홍빛을 발하는 변덕스럽고도 아름다운 아침의 그 불연속적이고도 대립되는 단편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화폭에 담기 위해…(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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