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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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처음 읽는 경우에도, ‘나는 OOO을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저는 민음사의 새로운 번역판으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그것도 1권과 2권을 읽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오랜 기다림 끝에 두 번째 에피소드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스완네 집 쪽으로’의 리뷰에서도 적었을 것입니다만, 민음사 판의 새로운 번역은 참 쉽게 읽히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요즈음 쓰는 말로 번역이 되어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습니다. 그리도 두 번째는 옮긴이가 달아놓은 풍부하고 세심한 각주는 작품에 등장하는 당시 프랑스의 사회적 분위기를 포함하여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일단 한번 읽어본 작품이라서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있는 것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화자의 사랑이야기에 관심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1); http://blog.joins.com/yang412/12855068] 그래서 리뷰의 요약을 이렇게 했습니다. “사랑은 눈에 콩깍지가 쓰여야 이루어진다던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사랑의 주는 희열과 이별의 고통을 새겨보는 시간”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는 화자의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과정에 무게가 실리는 것 같습니다. 화자는 어려서부터 베르고트의 작품을 읽고 따라 써보는 습작을 통하여 작가의 꿈을 조심스럽게 키워가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런 화자를 응원해주고 있지만, 아버지는 항상 내가 외교관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29쪽).

 

그런데 아버지가 초대한 직업외교관 노르푸아씨는 화자가 보기를 원하는 연극 <페드르>를 관람하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기도 하고, “작가가 되어도 대사 못지않게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며 대사와 동등한 활동을 할 수 있는데다가 대사보다 더 독립적일 수 있다고 단언”해서 화자 아버지의 마음을 바꾸는데 일조를 하게 됩니다. 실제로 아버지의 영향력 덕분에 외무부에서 일을 하게 된 젊은이가 글쓰기에 도전하여 책을 내고 성공한 사례도 인용하면서 화자의 문학에 대한 열망을 후원하기도 합니다(53쪽). 그 이면에는 새로운 계급 출신의 외교관들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그의 편향된 시각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환자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반면 노르푸아씨는 베르고트를 선망한다는 화자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베르고트를 피리장이라고 몰아붙이면서 화자가 쓴 글에 대하여도 ‘베르고트와 똑같은 결점이 벌써 자네에게서도 보이네. 먼저 듣기 좋은 단어들을 나란히 배열하고 다음에 가서야 내용을 따지는, 조금은 거꾸로 된 방식이지(90쪽)’라고 비판하여 화자를 낙망시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노르푸아씨는 화자와 어머니가 경외하는 베르고트가 스완씨네 살롱에 자주 온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스완씨에게 화자를 추천하여 주기를 청한 것이 계기가 되어 화자는 스완씨네 집에 초대를 받게 됩니다. 이곳에서 화자는 베르고트를 만나게 되고, 라신의 희곡 <페드르>에서 라 베르마의 연기를 놓고 토론을 나누게 됩니다. 노르푸아씨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베르고트에 대하여 긍정적인 견해를 견지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베르고트가 화자를 총명하다고 평가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듣게 된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스완씨의 딸 질베르트와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잦아지면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조금씩 가까워지게 됩니다. 문제는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미처 모르던 면이 가까이 지내다 보면 눈에 띄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할아버지의 기일에 음악회에 갈 예정이었던 질베르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들 생각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감정적인 문제에서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이야. 우리는 자신을 위해 뭔가를 느끼지 다른 사람을 위해 느끼는 건 아니잖아.(212쪽)”라고 단호히 말하면서 음악회에 가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화자는 콩깍지를 떼어내게 됩니다. 갈등의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고 새로운 인연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놓치고 지나갔던 것인데, 드레퓌스 사건이나 알베르틴의 등장이 미리 예고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작가가 전체의 이야기의 틀 안에 이미 자리를 잡고 전개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면 작가의 치밀한 기획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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