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장미여관으로 - 개정판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스24 덕분에 마광수교수님의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읽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북켄드에 개근하였다고 보내주셨습니다. 손에 들어온 책은 모두 읽는다, 그리고 읽은 책은 모두 리뷰를 적는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에 따라 읽고 적습니다. 그 옛날 필화사건으로 마교수님을 알고는 있지만, 문제가 된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습니다. 요즘 같다면 문제가 될까 싶은 내용인데 그때만 해도 너무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가자, 장미여관으로>의 2013년 개정판 서문에서 시인은 이 작품에 실려 있는 작품들은 자신의 정신세계를 응축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 무렵 시인의 상상력이 한창 무르익을 때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해 나온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함께, 나는 한국문학의 경건주의와 도덕주의를 부수려고 노력하며 솔직한 대리배설의 문학을 새로운 문학으로 제시했다.(6쪽)”라고 자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홀딱 벗겨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보다 무언가로 아슬아슬하게 가려 읽는 이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데서 극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꼭 들어맞는 비유는 아닙니다만, 조선시대를 풍미한 송강 정철, 서애 유성룡, 백사 이항복, 일송 심희수, 월사 이정구 등이 봄 꽃놀이를 갔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무엇인지 말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송강은 ‘맑은 밤 달 밝은 때에 다락 위로 구름 지나는 소리’가 제일 좋다 하였고, 일송은 ‘만산홍엽인데 바람 앞에 원숭이 우는 소리’가, 서애는 ‘새벽에 졸음이 밀리는데 술 거르는 소리’가, 그리고 월사는 ‘산간초당에서 선비가 시 읊는 소리’가 제일이라 하였습니다. 대체로 말씀하신 분의 성품을 잘 드러낸다고 보이는데, 이날의 장원은 백사가 내놓은 ‘동방화촉 좋은 밤에 신부가 다소곳이 치마끈 푸는 소리’였다고 합니다.

 

마시인의 기준대로 본다면 구닥다리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역시 가릴 곳은 가리는 신비주의가 좋은 것 같습니다. 홀딱 벗은 모습이 아름다운 경우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천해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집에는 솔직하게 까놓은 작품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 괴로워하는 이의 숨결까지 / 다 들리듯 / 고요한 하늘에선 // 밤마다 / 별들이 진다 // 들어 보라 // 멀리 외진 곳에서 누군가 / 그대의 아픔을 위해 / 기도하는 시간 // 지는 별들이 더욱 / 가깝게 느껴지고 // 오늘 / 그대의 수심(愁心)이 // 수많은 별들로 하여 / 더욱 / 빛난다”와 같이 주옥같은 시어로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별」도 실려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초판 서문에 적은 “나의 초기작에서는 치열한 고뇌와 갈등이 엿보이는데 요즘 작품은 너무 퇴폐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해주는 분들이 많다.(9쪽)”라는 부분을 보면 그 역시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작(詩作) 초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마침 오늘이 어버이날인 까닭인지 “어머니, 전 효도(孝道)라는 말이 싫어요 /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 또 기르시고 싶어서 기르셨나요? ”라고 시작하는 「효도에」라는 작품은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시인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물론 시인께서도 ‘그러나 어머니, 전 어머니를 사랑해요.’라고 말하고는 있습니다만, “‘너를 기르느라 이렇게 늙었다, 고생했다’ / 이런 말씀일랑 말아 주세요”라는 싸가지 없는 말씀을 오늘 어버이날 어머니께 드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지요. 이런 시절이 지나면 다시 은근한 멋과 맛을 살리는 작품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