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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킨트
니콜라이 그로츠니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4월
평점 :
오래전 유행하던 무협소설에 보면 무술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고난이도의 무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 수 있다는 경고를 만나게 됩니다. 주화입마란, “(수련과정에서 운기조식할 때 외부에서 충격을 받거나, 심마 같은 마음의 큰 동요가 있을 때, 혹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과하게 영약을 복용했을 때 몸 안에 도는 기를 통제하지 못하여 내공이 역류하거나 폭주하는 현상을 일컫는다.”라고 엔하위키 미러 백과사전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수의 경지에는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이겠지요.
불가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소설가 니콜라이 그로츠니의 장편소설 <분더킨트(Wunderkind)>를 읽으면서 ‘주화입마’라는 무술계 용어가 생각난 것은 재능을 가진 사람일수록 넘어야 할 험한 산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렸을 적 일찍 재능을 보여 신동이라고 주목받던 이가 정작 평범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꾸준한 훈련을 통하여 재능을 꽃피우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신동(神童)이라고 옮기는 독일어를 그대로 제목으로 한 <분더킨트> 음악에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선발하여 훈련시키는 불가리아의 소피아 음악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영재들, 특히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콘스탄틴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는 콘스탄틴의 삶에서 특별한 날에 생긴 일을 연대기(年代記)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곡으로 그 제목을 삼고 있는데 아마도 그날의 사건분위기 혹은 그날 주인공의 기분을 잘 나타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전공을 잘 살려낸 얼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5개의 에피소드에는 피아노곡의 제목을 달아두었는데, 어쩌면 에피소드의 분위기 혹은 그때 상황에서 콘스탄틴의 느낌을 잘 표현하는 곡으로 고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문에서도 곡의 느낌을 자세하게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제3장의 ‘소팽, 에튀드 C장조, op.10,no.1’에서는 이런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쇼팽을 연주할 때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음악만이, 음악의 환영만이, 음악의 환영이라는 환영만이, 기억된 소리와 주제와 과거를 떠다니다가 다른 주제와 다른 화음으로 모습을 바꾸는 음조의 붓놀림들로 이루어진 흐름만이 있을 뿐이었다. (…) 에튀드의 반복 부분은 항상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 그 부분에서 타오르는 과정된 불꽃, 의기양양한 절망, 맨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우레 소리 같은 도 음정, 내 육체를 태운 불꽃을 태워버리고 모든 원자와 기억과 예견된 미래의 모든 순간을 절멸하는 그 도 음정, … (75~76쪽)” 피아노곡을 잘 알면 작가가 전하려는 의미를 제대로 붙들 수 있을텐데 안타깝게도 제가 피아노곡에는 전혀 문외한이라서 아쉬움이 더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1987년 11월 3일 시작되어, 89년 1월 23일까지는 한 달에 서너 번도 적었다가 두세 달을 건너뛰기도 하다가 마지막 두 개의 에피소드는 9달 가까이 건너뛰기도 합니다. 꼭 한번 열일곱 번째 에피소드는 7년 전으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음악학교의 저학년 때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경험을 회상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어쩌면 작가 자신의 경험을 적고 있는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앞서 주화입마의 사례를 들었습니다만, 소피아 음악학교의 학생들 특히 특정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동들의 경우 튀는 행동을 해서 학교운영진을 곤란에 빠트리곤 하는데, 그 정도가 심하면 결국은 퇴교조치까지도 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조심해야 할 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회적 제약을 깨트리는 짓을 서슴치 않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신동의 재능을 완성하는데 제약이 되는 주화입마에 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은 절친 바딤과 이리나에 이어 콘스탄틴까지도 퇴교조치를 당하게 되고, 특히 이리나의 경우 교장의 죽음을 암시하는 행동을 하였다고 해서 정신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아서 읽으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공개되어 있습니다. 퇴교당한 콘스탄틴이 다시 음악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소피아 음악학교의 교육시스템에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서 우리네 아이들은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운지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