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법집행의 엄정함이라던가, 혹은 법해석의 편향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엇갈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법에 빈틈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법을 집행하는데 허점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성문법이 아니더라도 관습적으로 내려온 규율 같은 것이 잘 지켜지는 것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잦아지면서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규범을 정하여 서로 지키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바른 법치를 세운 분으로 꼽히는 한비자의 삶과 철학을 담은 <한비자, 바른 법치의 시작>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쓴 윤찬원교수님은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법을 마치 사유물인양 마음대로 만들고 폐기하는 등 농락해온 과거를 반성하고 교훈을 얻기 위하여 한비자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혈연을 기초로 한 종족들 간의 충돌과 투쟁이 반복되던 시기에 종족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종법(宗法)이 주(周)에 이르러 보다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지만, 기원전 771년 서주가 몰락하면서 해마다 흉년이 들어 사회가 불안에 빠지면서 같이 붕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기원전 221년 진나라 시황제에 의하여 통일이 될 때까지 중국 사회가 원활하게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되었고, 제자백가들이 수많은 방안을 내놓아 백가쟁명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제자백가들의 다양한 방안 가운데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한비자의 법가사상이었다고 합니다. 법가의 사상가들은 주로 조직론과 방법론, 지도자론, 지도방법에 관한 것들을 논하였는데, 이들의 생각, 특히 한비자의 제안이 시황제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기원전 3세기 초 한나라의 왕 안(安)의 서공자로 태어난 한비는 순자(荀子)를 사사했는데, 인간을 본질적으로 실리지향적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해가 엇갈려 늘 모순․대립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오는 반목은 사랑과 미움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에 의하여 전개되는 일종의 투쟁이라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시시비비, 즉 ‘선과 악’이라는 도덕덕 가치평가를 일체 배제하고, 오로지 ‘참(眞)이냐 거짓(僞)이냐’의 사실 인식만을 문제로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비는 언변이 없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설파하지 못하고 한나라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였는데, 정작 한나라를 위협하던 진나라 왕 정(나중에 시황제에 오르는)이 한비의 이론을 채택해 국정에 활용하면서 전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비는 동문 이사의 모함을 받아 진왕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아 자신의 철학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한비는 “역사는 진화하므로 문제가 발견되면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순응해 새로운 방법으로 처리해야 한다.(40쪽)”라는 발전적 역사철학으로 기왕의 중국의 역사철학과는 전혀 새로운 혁명적인 것이었다고 합니다. 과거에 영화에 집착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도 있어 과거의 일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과거의 일을 해결했던 방식이 오늘의 일을 해결하는데 있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한비자가 「오두」편에 적은 ‘夫古今異俗 新古異備 世異則事異(과거와 현재는 습속을 달리하고, 새로운 것과 옛 것은 대비함을 달리하여 시대가 다르면 일도 다르다)’라는 경구처럼 말입니다.
저자는 이사의 모함으로 목숨을 잃은 한비의 예를 들어, 정치권력의 냉엄한 속성을 경계하면서 양주와 도가가 사사로운 삶의 상대적인 안전을 추구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법가든 유가든 정치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한비 역시 노자의 해석을 통하여 도와 법의 결합을 추구하였다고 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도의 실현’이지만,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는 법치를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노자와 한비는 모든 인간의 행위, 특히 군주의 행위방식을 무위로 표현하였다고 보았습니다. 무위는 도의 무의지적, 비주관적 특성, 즉 자연성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관점은 도, 즉 변화하는 자연 질서에 대한 깊은 통찰로부터 성립된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