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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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시집을 리뷰할 때면 빼놓지 않고 인용할 것 같습니다만, 알프레드 드 뮈세의 시집 <오월의 밤>을 붙들고 씨름했다는 한 독자가 리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이긴 하지만...나에게도 시를 사랑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요즘은 詩 읽기가 힘들까,” 그리고 보면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는 선생님께서 분석해주시는 내용을 참고해가며 시를 외웠던 기억이 가물거리기는 합니다.

 

모처럼 시집을 열어보는 기회를 만났습니다. 다산북스의 리뷰어클럽 나나흰이 되어서 첫 번째 읽는 책이 바로 클럽의 이름이기도 한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타이틀로 한 동명의 시집입니다. 고전을 느리게 읽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데이비드 미킨스는 “가장 적은 수의 낱말로 가장 큰 효력을 발휘하는 가장 진정한 시”로 구약의 「시편」을 들었습니다만, 꼭 필요한 낱말에 함축적으로 메시지를 담아 전하는 시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킥스는 시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을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와 달리 시를 읽을 때에는 시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규칙 1), 시의 분위기와 논지를 이해하려면 문체를 감지해야 하며(규칙 4), 다른 장르를 읽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사전을 뒤적이고(규칙 7), 핵심 단어들을 추적해야 한다(규칙 8). 마지막으로 메모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규칙 12). 시를 읽은 감상을 적고, 그렇게 함으로써 시의 성격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시에 대한 느낌을 분명히 표현하면 시를 더욱더 즐길 수 있다.(데이비스 미킥스 지음, 느리게 읽기, 303쪽)

 

시인 백석의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다보면, 출판사에서 독자를 위하여 많은 배려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인이 살았던 시절과 지금과는 다른 언어적 괴리, 특히 시인이 일부러 사용했다고 하는 평북지방의 사투리를 주석으로 처리하여 사전을 뒤적이는 동안 시로부터 떠나 있어야 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덕분에 80여년의 세월의 간격을 훌쩍 뛰어넘어 투박해 보이는 사투리에 담긴 의미를 새겨볼 수도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께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에게」라는 시에서 “나타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백석은 당신한테 대체 어떤 사내였나요?”라고 물었는데, 저는 오히려 ‘나타샤는 누구인까?’하는 궁금증을 풀길이 없었습니다. 안 시인은 나타샤가 누구인지 알고 계신 듯합니다만.... 눈이 내리는 날 백석은 소주를 마시면서 세상을 등질 생각을 하는데, 나타샤는 이런 백석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백석을 위로하고 동행하러 올 것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O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고 위로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곁들여서 말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노왕(老王)으로부터 석상디기 밭을 얻어 귀농을 꿈꾸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보면 백석은 80여년의 세월을 앞서 살아간 예언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 헝겊심지에 아주까지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잠자리 조을든 무너진 성터 /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들 같다 / 오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정주성(定州城)」의 일부, 94쪽)라고 읊어 비어가는 오늘의 시골을 예언한 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이 마음에 들지 않을 이들을 이렇게 달래기도 합니다. “촌에 와서 오늘 아침 무엇이 분해서 우는 아이여 / 너는 분명히 하늘이 사랑하는 시인이나 농사꾼이 될 것이로다(「촌에서 온 아이」의 일부, 170쪽)”.라고 말입니다. 시집 말미에 붙인 ‘백석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철훈 기자는 “현재의 문학사가 남북한 모두의 불구적 성격에 구속돼 있다고 할 때 그 불구성을 극복하는 데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존재이다. 그는 남과 북이라는 체제적 성격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가장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이었다. 남북 언어의 통일과 조탁을 꾀하는 길라잡이로서 백석의 현재성은 두드러진다.”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실감할 수 없습니다만, 언젠가 우리 눈앞에 펼쳐질 통일의 그날 빛을 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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