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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리고 전쟁 : 게412
문창범 지음 / 중앙생활사 / 2014년 2월
평점 :
가끔씩은 세상사가 묘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연말 즈음해서 주변에서 유방암으로 진단받은 분이 몇 분 계셔서 진료에 도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유방암으로 꽤 긴 세월을 투병하신 끝에 다시 일자리로 돌아오신 보건복지부 주정미국장님께서 투병과정을 담은 <암이래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http://blog.joins.com/yang412/13362478>를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의 리뷰에는 암환자가 늘고 있는 현실에서 전문가들이 내놓는 책에서는 읽을 없는 내용을 담은 책들도 다양하게 있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암과 싸워 이긴 분들의 경험담을 비롯해서 암과 싸우고 있는 환자를 간병하는 분의 경험들이 암으로 진단받고서 황망한 상황에 빠져 있는 분들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핵물리학실험을 전공하신 문창범교수님이 유방암으로 투병하시는 아내와 함께 하는 암과의 전쟁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하신 <암 그리고 전쟁>은 역시 소중한 유방암 투병의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암과 투병하고 있는 분과 가장 가까운 남편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에서도 작은 제목을 ‘남편이 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쓴 320여 일간의 투병 일기’라고 뽑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암으로 투병하느라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내가 암선고를 받던 순간의 황망한 느낌으로부터 투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까지도 담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저자는 평소에 일기를 꾸준하게 써오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내와 함께하는 암과의 전쟁 뿐 아니라 사회의 암적 요소들에 대한 강렬한 투지를 보여주고 계신 점도 독특하다 하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께서 한시를 자주 인용하고 계신 것을 보면, 핵물리학을 전공하시는 한편 한시에도 조예가 깊은 것 같습니다. 암을 의미하는 cancer라는 영어단어는 히포크라테스 시대에 쓰던 ‘게’를 뜻하는 그리스어 카르키노시스(karkinosis)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저자는 그 의미에다가 아내가 처음 암진단을 통고받은 4월 12일을 조합하여 만든 ‘게412’라는 부제를 달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히포크라테스가 부푼 혈관들에 움켜쥐듯이 둘러싸인 종양을 보고, 모래 구멍에서 다리를 원형으로 펼치고 있는 게를 떠올렸다고 적었습니다만, 사실은 혈관들이 암종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커가는 암종이 살아남기 위하여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을 새로 만들어내도록 유도한 결과로 암종 주변에 굵직한 혈관들이 많아진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만...
저자의 투병일지를 읽으면서 뭔가 잘 못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환자를 진료하시는 의료진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질병에 대하여, 그리고 치료방향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구나 하는 점입니다. 마침 각급 병원에서 하고 있는 유방암 진료의 질에 대한 평가를 제가 맡고 있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평가항목에 들어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자의 아내가 이용한 병원은 치료는 잘하는 병원일지 모르지만 문제가 있는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결과에 대해 언급을 피하는 것은 ‘전문 영역에 속하는 것이니 당사자마저도 알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무시를 당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작용하게 된다.(99쪽)”라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면 유방암을 치료하고 있는 전국의 병원들을 평가해보았더니 지방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 병원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와 아내는 치료를 받기 위하여 서울로 왕래하는 수고를 더 했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일하고 있는 기관에서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노력을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의 기록에는 아내의 모습과 아내와 함께 가꾸는 텃밭, 그리고 산책하는 모습들을 담은 사진자료들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단조로울 수도 있는 책읽기에 변화를 준 것도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참 꼼꼼하게 기록했다 싶은 대목은 아내와 혹은 아이들과 어디서 밥을 먹었다는 것까지도 적고 있는 점이었습니다. “애들이 오니 엄마인 ‘인숙’의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 가족의 존재가 곧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79쪽)”라는 대목에서 역시 가족의 뭉쳐진 힘은 투병하는 환자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정리를 해보면, ‘유방암 환자를 두고 있는 가족, 특히 남편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환자를 돌봐야 하는지 길안내 하는 좋은 책이로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린다면 유방암은 다른 암과는 다른 면이 있어 재발이나 전이여부를 오랫동안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