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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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집을 읽게 된 것은 어렸을 적 읽었던 ‘큰 바위 얼굴’을 다시 읽어보려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만, 열 두편의 단편을 담은 민음사 판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에서는 ‘큰 바위 얼굴’은 작품의 질적 수준에 있어서 호손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작품해설에서는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에 실린 열 두편의 단편들을 “1830년대에 씌어진 일곱 작품(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 로저 멜빈의 매장, 젊은 굿맨 브라운, 웨이크필드, 야망이 큰 손님,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 목사의 검은 베일)이 인간의 본성, 인간의 운명, 죄의식, 청교도 정신 등 호손의 일반적인 관심사를 대체로 개인의 차원에서 탐색하고 있는 반면, 1840년대에 발표한 다섯 작품(반점, 천국행 철도,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라파치니의 딸, 이선 브랜드)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들을 과학의 힘, 실용주의, 기계문명 등 당대의 변화하는 사회양상에 대한 관심에 연결지어 문명 비판적인 관점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330쪽)”라고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미국 동부의 북부지역을 무대로 구대륙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이 다양해지면서 드러나는 집단 간의 갈등이라거나, 이주민들이 많아지면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의 경계와 부딪히면서 야기되는 갈등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을 읽으면서 과거와는 다른 시각에서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로저 맬빈의 매장’이 1725년 메인주 남서부 지역에서 피코킷 인디언들과의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전투에서 “적진지의 한 가운데에서 그들 병력의 두 배나 되는 적군에게 공격을 감행한 소수 부대의 영웅적 행동만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행동에서 존경할 만한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36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젊은 굿맨 브라운’에서도 굿맨 브라운이 “저 나무들 마다 악마 같은 인디언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군.(68쪽)”이라고 독백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 역시 인디언들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세월이 흘러 생각이 다양해진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삶에 대한 인식이 다른 두 마을 주민들이 공존을 위한 대화보다는 폭력에 의지한 징벌적 문제해결방식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산사태로 불행한 사태를 맞는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야망이 큰 손님’에서 산사태를 묘사하는 장면이라든가 그런 상황을 강건너 불처럼 보는 시각에 놀라기도 합니다. 산사태를 “무거운 발걸음 같은 소리가 밖에서 들리더니 가파른 산자락을 따라서 길고 빠른 걸음걸이로 우르르 내달아 집을 훌쩍 건너뛰고는 반대편 절벽에 부딪히는 것 같았다.(106쪽)”라고 묘사하면서 이런 상황을 맞은 가족들은 “저 산이 우리가 자기의 존재를 잊어버릴까 봐 우리한테 돌을 던지는 거라오”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안전에 대한 무관심이 놀랍기만 합니다.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장소를 피해서 집을 짓는다거나, 산에서 머물 때도 그런 장소를 피하는 용의주도함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산사태로 흙더미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를 듣고 머물고 있던 집에서 튀어나가 안전지대를 찾던 가족들이 오히려 불행한 상황을 맞는 아이러니를 읽으면서 산사태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예방책을 배울 수 있었다면, 지나치게 건조한 책읽기가 되었을까요?

그런가 하면, 식물독성으로부터 의약품개발에 몰두하는 비뚤어진 의사를 그리고 있는 ‘라파치니의 딸’에서 학술적 성과를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의사, 라파치니에 대한 평가를 읽으면서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의 환자들은 오직 새로운 실험의 대상으로서만 그에게 흥미가 있는 거지. 엄청나게 쌓아올린 그의 축적된 시직에 겨자씨 한 알만큼의 지식을 더 첨가하기 위해서 그는 인간의 생명을, 자기 자신의 생명을, 아니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야.(261쪽)” 의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에 이런 모습의 의사는 볼 수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호손은 사물의 이치를 결코 단순하게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이분법적 재단으로 파악하지 않는다.(331쪽)”라는 작품 해설에서 지적처럼, 그의 단편들은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아 다시 읽어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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