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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의 역사와 한반도의 발견 ㅣ 살림지식총서 138
김상근 지음 / 살림 / 2004년 11월
평점 :
전투씬이 화려한 역사극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지도는 일국을 경영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전투에서 승리를 일구는데 핵심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도는 국가의 기밀 중의 기밀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지도의 역사가 갑자기 화제에 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은 [민음 한국사] 시리즈의 첫 번째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http://blog.joins.com/yang412/13342028>에서도 1402년(태종 2년)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인용하여 조선이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나라에서 들여온 자료를 참고하여 동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인 세계관에 이슬람지역의 지식까지 담아낸 놀라운 작품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지도는 현존 지도 가운데 조선을 표현한 최초의 지도이고 아시아에서 만든 지도로는 처음으로 유럽을 표시한 지도였다는 점에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지도에 숨겨진 당대 제작자와 사용자의 욕망을 파헤치며 인류의 세계관을 풀어낸 제리 브로턴의 <욕망하는 지도>가 뽑은 열두 점의 세계지도에 당당히 올라 있다는데서 그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에서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연세대학교의 김상근교수님께서는 <세계지도의 역사와 한반도의 발견>에서 역시 지도의 역사를 바탕으로 그 궁금증에 답을 제시하였습니다. 먼저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는 지도의 역사를 보면,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방에 있는 동굴벽화에 지도라고 할 그림이 남아 있다고 하고, 기원전 6세기경,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에 의하여 실제로 지도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사본이기는 하지만 기원후 150년경에 제작된 프톨레미의 <지리학>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최고(最古)의 지도로 꼽히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톨레미의 지도는 14세기 말에서야 그 존재가 유럽에 알려져 재발견되면서 여기에 당시에 알려져 있던 지리적 정보가 추가되는 형태로 복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1477년 발간된 프톨레미 <지리학>에는 중국와 인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대한 정보가 왜곡된 형태로나마 표시되어 있지만, 한반도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라시아대륙의 귀퉁이에 숨어있는 한반도이지만 가까이는 일본과 중국을 넘어 신라시대에는 인도에까지 알려져 있었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고려 말에 개경에는 동남아시아를 벗어나는 지역과도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존재가 유럽에까지 알려진 것은 교황 이노센트 4세의 지시로 1254년 원나라 헌종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선교단 소속 루브룩의 윌리엄이라고 합니다. 당시 그는 우연히 만난 유럽인 윌리엄으로부터 중국 국경 너머에 있는 ‘카울레(Caule)’라는 나라의 사신을 만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선교보고서에 기록했던 것이고, 이 기록이 한반도의 존재를 유럽에 알린 최초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단 그 나라로 들어가면 입국했을 때의 나이가 그대로 멈춰 서게 되고 더 이상 늙지 않는다는 것이었다.(17쪽)”라고 적어 신비한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지도의 역사와 한반도의 발견>은 유럽에서 발전해온 지리학적 성과를 지도제작에 명확하게 반영하기에 이르는 지도제작의 발전과정을 요약하는 한편 유럽의 지도제작자들이 한반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즉 인식의 발전과정을 추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를 섬나라로 묘사했던 윌리엄과 달리 반도국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1602년판 <곤여만국전도>에 조선을 섬나라가 아닌 반도국으로 정확하게 그려넣은 마테오 리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사람들은 여전히 조선이 섬나라이거나 오이처럼 기름한 모습으로 알려졌는데, 1653년 오스트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르티노 마르티니가 비엔나에서 출간한 <신중국지도 총람>에서 제대로 된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미 8세기 무렵 아랍상인들은 신라의 존재를 알고 교역을 하고 있었으므로 한반도의 존재를 그들의 지도에 반영하고 있었을 것이나 이런 정보가 담긴 아랍의 지도가 유럽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한 것이 오랜 세월 동아시아 지역이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땅으로 남게 된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뛰어난 지도제작기술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면서 앞서 소개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세계지도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의 옛 자료가 당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성과라 할 수 있겠고, 우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 책읽기였습니다. 쪽수가 많지 않은 것처럼 잘 요약하였을 뿐 아니라 쉽게 설명되어 있어 학생들에게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