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회학
전상인 지음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아내는 선친께서 집에 오시면 꼭 오뎅국을 끓이곤 했습니다. 오뎅국물의 시원한 맛을 좋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요즈음 오뎅이 어렸을 적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팔던 오뎅과는 맛과 씹는 느낌이 달라 영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때는 골목마다 있기 마련인 구멍가게에 가면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던 구멍가게들이 어느 사이에 눈씻고 찾아볼래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이 편의점입니다. 그것도 체인점 형태로 전국에 깔려 있는 형태인 경우가대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편의점을 이용하는 경우가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만, 지나면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편의점에 드나드는 것 같습니다. 특히 드라마에서도 흔히 편의점이 주인공들의 주요 동선에 들어가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상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없이 지나치게 되는 편의점을 톱아본 전상인교수님의 <편의점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접하면서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참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는 말에서 “사회학 전공자로서 몇 년 전부터 사회학의 토착화, 미시화(微視化), 대중화라는 화두를 붙들고 있다. 토착화는 다른 나라의 이론이다 경험을 앞세우는 대신 우리의 고유한 문제를 우리 자신의 입장에서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미시화는 구조적이거나 거시적인 주제를 넘어서 연구 소재를 일상의 생활 주변에서 찾아보려는 것이다. 끝으로 대중화란 지식 생산 및 유통 체계의 엘리트주의로부터 벗어나 보통 사람의 언어로 소통하고 교감하자는 것이다.(5쪽)”라는 서두를 읽으면서 저자의 독특한 학문적 관심이 정말 중요한 화두를 제대로 붙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서 커다란 몫을 차지하게 된 편의점에 대한 알파에서부터 오메가까지 샅샅이 뒤져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제목을 얼핏 훑어봐도, 편의점의 정체로부터 편의점이라는 생소한 가게가 이 땅에 들어서서부터 초고속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 편의점이 그저 일상에 필요한 생필품을 파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기능을 갖추는 쪽으로 진화하는 과정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즉, 이 책은 편의점이 소매 유통 채널 가운데 하나라는 통상적 시각을 넘어 편의점이 안고 있는 문제까지 인문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끌어올려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의 핵심부분에서 저자는 소비주의 사회, 근대 합리주의, 글로컬리제이션, 도시 인프라 및 사회 양극화라는 사회학적 관점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편의점이라는 형식의 유통체계는 미국에서 시작되어 일본에서 꽃을 피워 우리나라에 들어온 셈이라고 합니다. 체인점 형식을 취하다보니 대규모 자본이 동원되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편의점 체인이 재벌그룹에 속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저런 관점에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적지 않은 외국 브랜드들이 단순히 외국의 브랜드를 파는 수준을 넘어서 한국적인 요소(여기에는 배달이라는 독특한 운영기술과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것도 있지만, 이탈리아가 고향인 피자에 김치나 불고기를 접목하여 토착화시키는 하드웨어적으로도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편의점 역시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에 부합하는 기능이 개발되어 진화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 프렌차이즈 체인에 대하여 “전 세계나 국토의 입맛을 하나로 길들여 놓는 폭력이 있고, 우리는 이미 그 폭력에 익숙해져 있다.”라고 어느 시인의 외침이 통째가 아닌 반쪽의 진실이라고 진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래로 우리나라는 대륙의 귀퉁이에 위치하여 대륙에서 흘러들어오는 온갖 문명을 받아들여 우리 방식으로 소화시켜 꽃을 피우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던 것입니다. 이제 거꾸로 해양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문명을 우리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전혀 새롭지 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저자가 편의점을 바라보는 시각은 세상을 치밀하게 지배하는 자들의 보이지 않는 촉수가 스며들어온 장소로 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 시대를 바쁘고 힘겹게 살아가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생활상의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처소나 방편이라는 시각으로 넓히고 있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가지는 의미의 깊이를 더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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