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꽃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3
정연철 지음 / 비룡소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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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블로거들의 잔치, 책나눔 릴레이 이벤트를 위하여 민음사에서 제공해주신 책입니다. 10대 아이들을 키우고 계신 분들이 많아 맞춤하다는 생각이 든 작품입니다. <마법의 꽃>은 동화를 써오신 정연철작가님의 첫 번째 청소년소설입니다. 저 역시 아이들이 성혼을 해야 하는 나이에 들어선지라 새로이 생기는 관심도 있고, 아스라이 가라앉은 어릴 적 추억의 한 자락을 길어 올리는 기회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대입학력고사를 앞두고 어릴 적의 악몽이 깨어나기 시작해서 결국 2교시 수리영역 시험을 치르다가 시험장을 뛰쳐나온 주인공은 억지로 기억에 묻어두었던 아버지와의 악연을 풀어내기 위하여 고향으로 향하게 되는데, 고향집에서 발견한 어릴 적 일기장을 바탕으로 옛 기억을 복구해가면서 아버지와 화해의 손을 내밀게 된다는 성장소설입니다.

 

저 역시 전군도로 변이라고는 하지만 면소재지에서 떨어진 곳에서 잠시 살다가 군산으로 이사를 했는데, 도시라고는 하지만 손바닥만한 중심가에서는 떨어져 있던 탓이라서 조금만 나가면 시골분위기 그대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일기장을 통해서 보여주는 어릴 적 풍경이 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친근하면서도 다시 기억에 묻고 싶기도 합니다.

 

작가는 주인공의 일기장에서 한 대목을 떼어내서, 훌쩍 자란 주인공의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구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저도 중2때부터 시작해서 대학에 다닐 때까지 이어가던 일기장을 시골집 벽장 속에 처박아두었던 것을 결혼을 하고서 발견했는데, 몇 줄 읽다보니 너무나도 치졸한 느낌이 들어서 결국은 내다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작품을 읽다보니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3남2녀 가운데 아래로 여동생을 하나 둔 주인공은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술과 도박, 여기에 더하여 바람기까지 있어 가족들을 힘들게 하던 아버지에 대한 공포와 반항심을 키워오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고향을 탈출하여 공부에 매진하여 그 결과를 거둘 수 있는 고비에 이르렀다가 억눌렀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좌절을 겪게 됩니다만, 다시 찾은 고향에서 아버지 나름대로의 마음고생을 재인식하고 아버지와 화해를 하면서 다시 출발한다는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면 주인공이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만 키워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있습니다. 태풍에 쓰러진 벼를 세워 묶느라 온 식구가 하루 종일 논일을 하고서 돌아온 날, 평상에서 쉬는 아버지를 위하여 어머니는 술과 안주를 챙기는 동안 주인공은 며칠 전 장독 속에 넣어 삭인 감을 내다 깍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도 제일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했으니까. 결코 아버지가 좋아져서 혹은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한 짓은 아니었다. 제발 아버지가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133쪽)”고 적기는 했습니다만,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장면은 뻥튀기 장사에 나선 아버지를 따라나섰다가 취하신 아버지 대신 수레를 밀고 오다가 형과 누이가 마중나오는 바람에 술 취한 아버지와 수레에 동승하게 된 주인공이 아버지가 풍기는 술냄새가 싫으면서도 아버지 옆에 바짝 붙어 앉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말기위암으로 진단받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아버지를 위하여 읍내에서 국화빵을 사들고 오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광기어린 삶의 피해자였으면서도 고스란히 따라 살아낸 것인데, 주인공은 그런 인과의 끈을 끊어낼 수 있을까요? 어렸을 적 일기장의 마지막에 쓰인 “아버지! 당신의 깜깜한 동굴 같은 배 속에서 산달을 몇 년 넘기고 피투성이가 된 채, 하지만 천만다행히 무사하게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 그리고, 방금 질긴 탯줄을 끊었습니다.(227~228쪽)” 주인공은 자신이 찾은 길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뻥튀기, 즉 튀밥이 마법의 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들의 젊은이들이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래도 믿을만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힘내라, 권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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