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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사이 2 ㅣ 밤과 낮 사이 2
빌 프론지니 외 지음, 이지연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3월
평점 :
<밤과 낮 사이> 1권에서는 16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습니다만, 2권에서는 12편을 담고 있습니다. 그만큼 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것이 되겠지요? 2권에 나오는 단편들은 무대가 국제화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특히 서울 근처 팔당 기지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룬 마틴 리먼의 「오양의 정반대」도 있어 반갑기도 하면서 왠지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다시는 그 둘이 만날 일 없으리(309쪽)”라는 현자의 말이 동서양을 두고 한 말이라고 적었습니다만, 정말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작가의 장담에 저도 한 표를 던집니다.
질투의 힘은 참 무섭습니다. 기지촌의 스타 오양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면서 그녀를 쫓아다니던 미군이 혐의를 받게 되면서 미군 조사관이 투입되어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데....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단서가 애매한 상황인데 두 조사관은 진범을 추리하여 압박해 들어가는 과정이 조금은 긴박감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도 진범이 공개된 장소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군용대검으로 노인을 위협하다가 몰려든 군중에 몰매를 맞아 숨지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 같습니다. 어쩌면, “지역 주민들이 무리 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충격을 받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국에서 연장자는 고이 받들어지지 이렇게 학대당하는 법이 없다. 군중으로부터 웅성웅성 욕설들이 일어났다.(343~344쪽)” 우 고유의 경로사상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만, 아무리 군중이라도 흉기를 들고 있는 범인에게 다가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경로사상이라는 우리의 풍습을 되새기게 된 것 같습니다.
에디트 피아프가 출생한 파리의 벨르빌 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 도미니크 메나르의 「장밋빛 인생」은 두 가지 관점에서 흥미를 끌었습니다. 첫 번째는 누구나 에디트 피아프가 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피아프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레일라는 피아프처럼 노래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지만 세상이 녹록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레일라의 재능이 부족한 탓인지 제대로 된 기회를 붙들지 못한 채 어느날 살해된 채로 발견됩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은 흥미롭게도 수사관이 아니라 글쓰기를 해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작가지망생 아르노입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살인현장에 끌려가서 등 떼미는 친구 덕분에 우연히 만나게 된 목격자로부터 죽은 여자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노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르노는 “아무 말씀 하지 마세요. 아무한테도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146쪽)”라고 당부를 하는데, 정작 노인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아무 말 하지 말라고요? 왜지요?” 이 장면에서 얼핏 ‘이 노인이 왜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선생이 거기 서서 나에게 하는 그 말, 그 말은 내 야이기가 아니에요. 나는 선생이 뭘 하자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147쪽)”라면서 아르노를 처음 본 듯 자꾸만 뜯어보았는데, 마치 자기 집 주방에 어쩌다 이 낯선 사람이 들어와 있는 건지, 어쩌다 사이에 커피포트를 놓고 마주 앉은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을 빼꼼히 열고 아르노를 집으로 끌어들인 것은 노인이었거든요. 그런 노인이 “가세요, 선생. 가요, 부탁이니까”라고 아르노를 밀어냈다는 작가의 설명을 듣고서 떠올린 소설이 바로 치매환자가 저질렀다는 살인사건을 다룬 김영하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http://blog.joins.com/yang412/13208200>입니다. 그책의 리뷰에서도 적었습니다만, 치매환자가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많이 있어도 치매환자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건을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치밀한 사고체계가 필요한 살인사건을 치매환자가 저지른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억들이 손상되어가고 있는 치매환자가 「장밋빛 인생」처럼 우발적 상황이라고 해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 싶습니다.
두 편의 이야기 말고도 흥미를 끄는 작품들이 열편이나 더 있습니다. 뉴욕시의 거리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뉴욕시의 옛모습을 알게 된다거나, 전편에 등장했던 마녀 이야기에 이어서 늑대인간이 벌이는 살인사건의 이야기는 공연히 주변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바다별님께서 댓글에 적으신 것처럼 골라 읽는 재미가 쏠쏠한 단편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