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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사이 1 ㅣ 밤과 낮 사이 1
마이클 코넬리 외 지음, 이지연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3월
평점 :
추리소설에 빠져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혼자 근무하는 것이라서 남아도는 시간을 적절하게 보내는 방법으로 고른 것이 가벼운 책읽기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작가의 치밀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스토리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법의부검을 맡아하면서 주변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익숙한 이름을 볼 수 없었습니다만, 이름만으로도 쟁쟁하다는 영미권 장르문학 대표주자 28인의 단편소설들을 묶은 <밤과 낮 사이>를 읽으면서 지방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권에는 모두 18편의 장르단편소설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공황시절을 뚫고 살아남은 가족들 사이에 숨겨진 비밀을 다룬 패트리샤 애보트의 <그들 욕망의 도구>를 비롯하여, 스토커에 쫓겨 뉴욕을 떠나 서부에 정착하여 글을 쓰고 있는 주인공이 조종불능상태로 떠가는 열기구를 붙들었다가 은행강도의 협박을 받게 되는 톰 피치릴리의 <밤과 낮 사이> 등은 설마 저런 상황과 마주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간혹 뉴스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보니, 우연히라도 남의 일에 끼어드는 일을 피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장르소설이라고 해서 끔찍한 범죄 스토리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틴 에드워즈의 <책 제본가의 도제>는 장래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탈리아를 여행하게 된 남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서적애호가의 격려로 책제본 일을 배우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졸리는 “기꺼이 온몸을 바칠 만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중(77쪽)”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평생을 바칠 직업을 결정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인데, 저를 포함해서 그런 사람을 만나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참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낸시 피커드의 <심술 생크스 여사 유감>이나 메건 애보트의 <즐거운 응원단>이라는 단편 역시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한이 맺힐 정도로 부딪히며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남을 아프게 하는 만큼 그 아픔이 자신에게도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첫남편>이나, 피터 로빈슨의 <개 산책시키기>처럼 부부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살인까지도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여름에 밀폐된 차 속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마이클 코넬리의 <아버지날>에서는 완전범죄는 없다는 사실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제레미아 힐리의 <모자 족인>도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수사기법이 날로 발전하고, 최근에 발전된 IT기술을 기반으로 한 CCTV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깔려있는지 안다면 섣부르게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입니다.
일단은 강력사건을 다룬 소설들이 많은 편입니다만, 살레인 해리스의 <운이 좋아>처럼 마법사와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옆 자리에서 일하는 동료의 얼굴을 힐끗 돌아보기 마련입니다. 입대할 당시 100km행군훈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출발할 때는 대오를 갖추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오가 늘어지기 시작하는데, 한밤중에는 앞에 가는 사람이나 뒤에 오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떨어지면 옆에서 도란거리면서 같이 가는 동료가 사람인지 귀신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던 경험을 보면, 이런 장르의 스토리가 먹히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 이 책에 담은 단편소설들은 기본적으로 재미있습니다. 짧지만 기승전결이 갖추어져 있고,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있고, 짧기 때문에 책 읽는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