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곡 - 연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1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신곡-지옥편>에서 죄는 차치하더라고 그들이 받고 있는 형벌이 얼마나 끔찍하던지 죄를 지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지옥의 형벌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희망’이라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처절한 것 같습니다. 그러한 지옥에 비하면 연옥은 죄질이 크지 않아 희망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질에 따라서 더 깊은 땅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깔대기 모양의 지옥과는 달리 바다에 떠있는 산 모양으로 되어 있어 단계별로 상승하여 마침내는 천국으로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연옥에 갇힌 영혼들은 이러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단테가 신기해보일 법도 한데, 자신의 죄를 씻는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우려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현실세계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그들을 위하여 진심으로 빌어주는 기도가 그들의 죄업을 씻어 형벌기간을 단축해줄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옥과는 달리 연옥은 아래서 시작할 때가 가장 힘들고 위로 오를수록 쉬워진다는 점입니다. 지형도 그렇지만 죄를 씻어냄에 따라서 영혼이 가벼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답니다.
연옥에서 단테가 만나는 영혼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있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연관을 지으려는 구조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산을 오르는 연옥의 구조적 특성이 반영된 것인지 무거운 바위를 등에 얹고 묵묵히 오르는 형벌을 받는 영혼을 만나기도 합니다. 유럽을 여행하다 지붕을 머리에 얹고 있는 조각상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제 가슴을 무릎에 의지하는 인간 형상의 기둥이 지붕이나 천장의 무게를 받치는 것을 본다. 이는 그저 기둥일 뿐이지만 보는 사람에게 생생한 괴로움을 일으키니, 저 영혼이 보인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연옥편 10곡, 99쪽)”
지옥을 거쳐 연옥을 여행하는 동안 단테가 가지고 의문은 ‘세상에서 미덕은 싹이 말라 버려 황량하기 그지없고 사악함으로 뒤덮여 더욱 무성해지고 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단테의 궁금증에 대하여 생전에 관대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는 베네치아의 기사 마르코는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이 어떤 예정된 계획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모든 원인을 하늘로 돌리려고 하오만, (…) 하늘이 사람들의 행동을 주관하시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은 아니오. (…) 인간들은 더 위대한 힘을 가진 자유로운 주체들이요. (…) 원인은 사람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오!(연옥편 148쪽)”라고 설명해줍니다. 모든 것이 누군가의 통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신체에서 영혼이 거처하는 곳에 대한 당시의 견해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뇌의 조직이 태아에서 완전해지면 곧 부동의 원동자께서 자연의 그런 기술에 대해 기뻐하시며 힘을 지닌 새 영혼을 그 뇌에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러면 그것은 능동적인 것으로 동화되어 하나의 단일 영혼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그 자체로서 살고 느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연옥편, 223쪽)” 그 부동의 원동자께서 단테로 하여금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당을 여행하도록 허락한 배경도 연옥편에서 나옵니다. “이제 그대 세상의 죄인들을 돕기 위해 지금부터 저 전차를 잘 봐두었다가 돌아가서 그대가 본 것을 글로 쓰세요.(연옥편, 288쪽)”
연옥편에서 단테의 여행을 안내하는 새로운 길잡이가 등장하게 됩니다. 연옥편 21곡에 등장하는 로마 시인 스타티우스입니다. 스타티우스는 베르길리우스로(이성과 고전문화)부터 베아트리체(은총과 계시)로 가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미주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안내할 길잡이 베아트리체는 연옥편의 30곡에서 등장합니다. 단테는 그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다음처럼 노래합니다. “그녀를 온전히 볼 수 없었던 나의 영혼은 순식간에 그녀의 신비와 권능에 압도되어 전부터 지속되어 온 사랑의 힘을 다시 느꼈다.(연옥편, 269쪽)”
민음사판 <신곡>에는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년에 단테의 <코메디아; 신곡>에 심취하여 그렸다는 102점의 그림을 삽입하여 읽는 느낌을 더하게 합니다. 블레이크의 그림과 단테의 글이 시간적 영속성을 뛰어넘어 서로의 이미지를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하기위한 기획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