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디아나
조르주 상드 지음, 염승섭 옮김 / 시와진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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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디아나>는 죠르주 상드가 G. Sand라는 필명으로 1832년에 발표한 첫 소설입니다. 이 작품을 읽게 된 것은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때문입니다. 마르셀의 할머니께서 주인공의 생일선물로 뮈세의 시집과 루소의 작품 한 권과 함께 고른 책이었는데, 할머니께서 이 책들을 고른 이유는 “좋지 않은 책을 읽는 것은 사탕이나 과자처럼 건강에 해롭지만, 천재의 위대한 숨결이 담긴 책은 어린아이의 정신에 대기나 바닷바람이 몸에 끼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하지도 않고 아이의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마르셀 푸르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스완네 집 쪽으로 1, 70쪽, 민음사, 2012년)”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책 이름을 듣고는 할머니를 거의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는 바람에 조르주 상드의 전원 소설 네 권으로 바꿔 오신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각주에 보면, <앵디아나>가 조르주 상드의 다른 전원 소설과는 달리 정념과 간통과 자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1952년에 쓴 소개의 글을 통하여 “이는 나의 첫 소설로, 이것을 어떤 계획이나 또는 어떤 예술 내지는 철학의 이론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집필했다.(7쪽)”라고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32년판 서문에서 “등장인물들이 사회적 폐단으로 인해 겪는 고통의 울부짖음을 표현하게 되었다면, 만약 그가 더 나은 삶을 향한 그들의 갈망들을 기록함에 주저하지 않았다면, 사회가 그 불평등에 대해, 운명이 그 변덕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11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이 책의 집필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 짐작할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앵디아나>는 부도덕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도 어린 마르셀이 읽기에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앵디아나>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파리 동쪽의 시골 마을 브리를 무대로 세 명의 남자와 여자 주인공 앵디아나(Indiana) 사이에 펼쳐지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작가가 제목에서 암시한 것처럼 열 아홉 살인 앵디아나는 인도양에 있는 프랑스령 부르봉섬에서 성장해서 퇴역한 델마르 대령과 결혼해서 브리로 이주해 온 것입니다. 델마르 대령은 이웃에와서 살고 있는 앵디아나의 사촌오빠 랄프와의 관계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젊은 아내를 둔 늙은 남편의 안타까운 몸부림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랄프는 그야말로 앵디아나의 후견인으로서의 역할에서 더도 덜도 아닌 위치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고통스럽게 성장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앵디아나는 남편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행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앵디아나에게 전혀 새로운 성향을 가진 레이몽과 조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레이몽이라는 인물을 눈앞에 이익을 뒤쫓는 단순한 성격입니다. 즉흥적이면서도 집요하기도 하지만 갑작스럽게 마음이 바뀌는 요즈음 말로 하면 B형남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레이몽은 앵디아나를 따라온 부르봉출신 하녀 누운과 밀회를 즐기기 위하여 담을 넘다가 델마르 대령의 총격에 놀라 부상을 입은 것이 계기가 되어 앵디아나에 빠져들면서 누운을 버리게 되는데, 결국은 누운은 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게 됩니다.

 

델마르씨가 출타한 틈을 타서 앵디아나의 방까지 잠입할 정도의 대담성을 보이는 레이몽은 임신한 누운의 죽음에 대하여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못하는 철면피한 일면도 있습니다. 결국은 앵디아나의 마음을 거의 움켜쥐기에 이르렀다가 랄프의 경고를 받기도 합니다. 사단은 델마르 대령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프랑스에서의 살림을 정리해서 부르봉섬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앵디아나는 대령을 버리고 레이몽과의 결합까지 고려하는 결단을 내리지만, 비겁한 레이몽이 앵디아나를 거절하면서 앵디아나는 부르봉섬으로 돌아갑니다. 마음 한 켠에 남은 미련이 늘 문제가 되는 것처럼, 레이몽이 보낸 마지막 편지가 앵디아나를 부추겨 섬을 탈출하여 프랑스로 향하지만 잠시 앵디아나 쪽으로 움직였던 레이몽은 그 사이 새로 등장한 드 낭지 양과 결혼하고 맙니다. 상심한 끝에 죽음을 생각하는 앵디아나 앞에 영원한 수호신 랄프가 나타나 델마르 대령의 죽음을 알리면서 부르봉섬의 폭포에서 같이 생을 마감하기를 권합니다. 두 사람이 죽음을 결심하는 배경이 분명하게 와 닿지 않는 느낌이 있었는데, 결국은 두 사람은 죽음 대신에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앵디아나가 레이몽과의 관계를 두고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그녀가 불과 열아홉 살 밖에 되지 않는 점을 보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사랑에 빠진 그녀가 레이몽과 깊은 관계를 맺지 말라는 랄프의 충고를 외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작가의 말처럼 문제가 있는 결혼생활을 정리하려는 앵디아나의 선택을 두고 사회적으로 부도덕하다고 비난했다는 당시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혼인의 관계 이외의 정부(情夫)-정부(情婦)의 관계를 드러내기도 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서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남편으로부터 학대받는 앵디아나에게 많은 응원의 목소리가 쏟아지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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