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 지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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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미국의 보스턴을 무대로 하여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뒤쫓는 스토리를 다룬 매튜 펄의 <단테 클럽; http://blog.joins.com/yang412/12943712, http://blog.joins.com/yang412/12944602>을 읽으면서 단테의 <신곡>을 먼저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단테가 <신곡, 지옥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목에 따른 콘트라파소(contrapasso), 즉 영원한 형벌을 받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단테클럽>에 등장하는 희생자들 역시 롱펠로우의 번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에 따라 지옥편에서 보여준 방식으로 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265년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 알리기에리는 인문주의 학문을 익혀 문학가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렌체의 정의와 번영을 위해 목소리를 내다가 추방을 당한 그는 평생 명예롭게 귀향을 요청받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신곡>은 피렌체에서 쫓겨나 유랑을 하면서 구상되고 쓰인 책입니다. 단테가 신곡을 쓰게 된 배경은 서곡이라 할 수 있는 지옥편 1곡의 서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 그러나 내 마음을 무서움으로 적셨던 골짜기기 끝나는 어느 언덕 기슭에 이르렀을 때, 나는 위를 바라보았고, 벌써 별의 빛줄기에 휘감긴 산꼭대기를 보았다. 사람들이 자기 길을 올바로 걷도록 이끄는 별이었다.(7~8쪽)” 그런데 가파른 길이 막 시작되는 곳에서 사납게 생긴 표범과 사자와 암늑대가 한 마리씩 나타나는 바람에 낙망하고 만 그 앞에 길잡이가 나타납니다. 여기 등장하는 표범, 사자 그리고 암늑대는 음란, 오만, 탐욕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 길잡이는 단테가 경외해오던 베르길리우스입니다. 그는 “네가 날 따르는 것이 너의 최선이라고 생각되어 판단하노니, 내 너의 길잡이 노릇을 하여 여기서부터 영원한 곳으로 너를 이끌 것이다. 그러는 동안 너는 좌절의 울부짖음을 들을 것이고, 두 번째 죽음을 부르짖는 고통 받는 옛 영혼들을 볼 것이다. 언젠가는 축복받은 사람들과 함께하리라는 희망을 안고 불 고문을 참고 견디는 영혼들 또한 보게 될 것이다. 네가 그 축복받은 영혼들에게 오르고 싶다면, 나는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영혼에게 널 맡기고 떠날 것이다.(14쪽)”라고 예언하면서 같이 여행할 것을 권하여,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돌아보는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단테는 그 여행을 1300년 3월 25일 성금요일에 시작하여 지옥을 3일, 연옥을 3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당을 하루해서 4월 1일에 여행을 마치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지옥은 형벌의 영원성을 상징하듯 깔때기 모양으로 땅속에 내리꽂힌 모양이고, 연옥은 바다 위로 솟아오른 하나의 산의 형태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옥은 모두 아홉 개의 고리로 이루어져있어 죄가 무거울수록 더 깊은 고리에 내쳐지고 무거운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첫 번째 고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리스도 이전에 살면서 하느님을 올바로 대하지 않은 사람들이 거처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시인들의 왕 호메로스를 선두로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그리고 루카누스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베르길리우스에 이어 단테를 초청하여 여섯 번째가 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단테는 그리스-로마의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부터 그가 살던 시절에 죽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죄의 경중에 따라서 지옥의 아홉 개의 고리를 여행하면서 만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창세기」를 처음부터 잘 되새겨 보면 인간은 자연과 기술로 삶을 영위하고 번영시키여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114쪽)”라듣가 “하느님의 의지와 섭리없이 내가 여기에 올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느냐?(209쪽)” 등등 곳곳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곡>은 신학적으로 접근해야 이해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옮긴이는 신학보다는 아무래도 인간학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합니다. 32곡에서는 다음과 같은 형벌을 받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꿈속에서 개구리가 물 위로 코만 내밀고 개굴거리는 것처럼, 호수의 얼음 속에 갇힌 영혼들이 부끄러움이 먼저 드러나는 얼굴까지 추위로 납빛이 되어 황새의 입놀림처럼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327쪽)” <단테클럽>의 크라이막스에서 보는 범행현장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지옥편에서 새긴 대목입니다. “잘 듣는 사람이 마음에 새기는 법이다.(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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