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 박람강기 프로젝트 1
찰스 디킨스.윌리엄 윌키 콜린스 지음, 김보은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과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다른 지방을 여행하는 것은 통상이나 외교, 혹은 전쟁에 참가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하는데, 순수하게 유람을 목적으로 한 여행은 18세기 무렵에서야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볼프 슈나이더는 <인간이력서; http://blog.joins.com/yang412/13296412>에서 “관광산업의 시작은 여행을 즐기는 영국인들의 습성과 영국적 ‘스포츠’ 정신의 산물이었다. 영국의 출판업자 존 머리는 1836년 <여행자를 위한 핸드북>을 펴냈다.(246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유럽에서 세상구경하는 일은 영국사람이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잘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작가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야말로 영국의 유명한 작가 두 사람이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정리한 것인데,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헷갈립니다.

 

영문학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찰스 디킨스와 미스터리 소설의 초창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윌키 콜린스 두 작가는 게으름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모양으로, 완벽히 유유자적한 도보여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1857년 가을, 번잡한 도시와 자신들의 주인인 문학이라는 부인으로부터 도망쳐 북잉글랜드를 향해 떠나지만, 이내 도보여행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기차역으로 향하고 맙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프랜시스 굿차일드와 토머스 아이들은 각각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제일 먼저 칼라일에 도착해서 잡은 여관에서 빈둥거리다 컴벌랜드의 케록산에 대한 글을 읽고 정상에 오르기로 결정하지만, 쏟아지는 비와 안개를 뚫고 올라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고, 설상가상 토머스가 발목을 접지르는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프랜시스는 보고들은 광경을 토머스에게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토머스는 그야말로 늘어져서 설명을 듣는 입장을 고수하게 됩니다.

 

부상을 치료하기 위하여 부른 의사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아서 홀리데이는 경마를 구경하기 위하여 돈캐스터에 간 적이 있는데, 돈 케스터의 경마는 아주 유명해서 경마가 열리는 기간 동안에는 미리 숙소를 예약하지 않으면 길거리 잠을 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숙소를 찾아 헤매던 홀리데이씨는 우연찮게 얻은 여관방에서 방금 사망한 젊은이와 밤을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는데 공포와 싸우던 가운데 죽었다던 젊은이가 소생하는 기미를 발견하고 의사를 부르게 됩니다. 그렇게 소생한 젊은이는 아서의 배다른 형제로 아서가 좋아하는 여성과 이미 약혼한 사이라는 비극적 상황으로 엮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살아온 젊은이가 바로 그 여성의 약혼자 였고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하여 파혼하게 되지만, 그 여성은 삼년 후에 병으로 죽게 된다는 슬픈이야기입니다.

 

의사가 전하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발길을 돈캐스터 경마로 이끌어가게 됩니다. 중간에 멈춘 해변도시 엔론비에서 두 사람이 하루를 보내는 모습은 이렇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프랜시스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사람과 사물을 끊임없이 관찰한 내용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줄곧 자신이 현존하는 생명체 중 가장 빈둥거리고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동안, 부상당한 토머스가 집 안에 갇혀서 하루 종일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독자들이 궁금해 할만하다.(107쪽)” 정답은 “토머스는 시간을 보내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소파에 엎드린 채 가만히 시간이 흘러가도록 두었다.” 정말 초절정의 빈둥거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토머스의 이런 삶의 태도는 유년기에 잠시 근면에 눈을 떴다가 동무들로부터 내침을 당한 쓰라린 추억에 기인하는 것임이 여기에서 밝혀집니다.

 

엔론비를 떠난 두 사람은 고택을 조한 랭카스터 여관에서 여섯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유령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고, 그(들)로부터 사연을 듣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두 사람이 북잉글랜드를 느긋하게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적은 여행기이면서도 아마도 작가적 상상으로 빚어낸 두 편의 유령이야기를 잘 배합한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사람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예약없이 관광지를 찾았다가 숙소를 구하지 못해 다시 돌아 나오던 추억도 떠오르고, 안개를 헤치고 차를 몰던 여행길도 다시 생각납니다. 역시 뛰어난 작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여행기는 읽는 매력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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