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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학 강의 - 탈근대의 관점으로 읽는 현대미학 ㅣ 진중권 미학 에세이 1
진중권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8월
평점 :
계사년에 마지막으로 쓰는 리뷰입니다. 저자가 재판 서문의 모두에 적은 것처럼 ‘딱딱한 이론서’로 이 분야에 겨우 관심을 두기 시작한 수준에서는 아직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용어들이 난무하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점이 있었습니다. 다만 저자가 논리를 펼치는 바탕이 된 책을 읽은 부분에서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제목을 보면서 기대했던 현대적 의미에서의 미학에 대한 앎을 넓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만, 탈근대적 접근, 즉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시기의 미학사조를 검토한 것으로 아직은 그에 필적할 만큼 뚜렷한 미학사조는 드러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저자는 발터 베냐민, 마르틴 하이데거, 테오도르 아도르노,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장-프랑수와 리오타르 그리고 장 보드리야르 등 구대륙의 근대 철학자들의 미학에 대한 논지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 오늘날의 철학과 미학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하고 있어서 업데이트가 필요한 상황에서 “최근 등장한 미학의 주요 흐름을 소개하면서, 근대미학과 탈근대미학의 반복적 대비를 통해 이 패러다임 변화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려고 했다.(8쪽)”고 적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제야 주목을 받고 있는 베냐민의 탈근대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과 현대예술이 ‘숭고’와 ‘시뮐라크르’라는 서로 대립하며 보족하는 두 개념으로만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다루고 있는 베냐민에서 등장하는 ‘숭고’와 ‘시뮐라크르’라는 단어의 개념을 먼저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손에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자를 병기했더라면 보다 쉽게 이해될 수도 있었겠다 싶은데, 베냐민이 제시하고 있는 ‘근원관계’라는 관념에서 시작해보면, “‘근원’의 개념은 현전'(prèsence)의 미학, 숭고의 미학을 지시한다.(59쪽)”고 하였으니, 쉽게 이해하면 원본과 복제본의 관계로 보면 되는 것 같습니다. 미학의 논의대상이 되는 예술작품은 존재하는 대상을 작가의 사고를 통하여 분석되고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고 본다면 원본과 복제본의 관계가 모호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베냐민에게서 숭고와 시뮐라크르는 어지럽게 교차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그의 숭고는 시뮐라크르를 함축하고, 또 그의 시뮐라크르는 숭고를 배제하지 않는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시뮐라크르 미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안에는 상사와 유사의 차이, 원본과 복제 관계의 전도 등 시뮐라크르의 모든 요소가 들어있다.(60쪽)”라는 구절에는 앞서 말씀드린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위키백과사전에서는,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을 지칭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때로는 존재하는 것보다 더 실재처럼 인식되는 대체물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가장假裝>으로 번역하는 것이 제일 근사하겠지만 다른 유사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대개 원어 그대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이데거로 넘어가면 결국 하이데거의 미학비판은 근대의 예술문화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데, “예술작품과 예술가가 존재하는 것은 예술이 양자의 근원으로서 존재하는 한에서가 아닐까?(67쪽)”라는 물음으로 출발합니다. 그리스 문명이 남겨놓은 신상(神像)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눈길을 붙잡습니다. “신상은 그 모델이 된 인간의 모방도, 눈으로 볼 수 없는 신의 재현도 아니다. 그들은 먼저 존재하는 신을 본떠 신상을 만든 게 아니라, 신상을 만듦으로써 신을 비로소 존재하게 하고, 그로써 자신들의 민족적 삶의 세계를 세웠던 것이다.(80쪽)” 아도르노에 이르러 겨우 현대미학의 어려움이 가늠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예술은 낯설다. 미술은 보이지 않고, 음악은 들리지 않으며 예술 감상은 더 이상 즐거운 체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절대적 부정을 통해 예술은 견딜 수 없는 현실을 증언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그리워한다. 또한 우리는 한없이 외로워진 미술과 음악에 말을 걸기 위해서는 철학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현대예술은 철학과 비평을 동반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라고 출판사가 요약한 글이 바로, 저자가 여덟 명의 철학자들을 통하여 현대미학을 논하게 된 이유가 손에 잡히는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와 자크 데리다의 미학비판을 논하면서 구두를 그린 고흐의 작품을 공통의 매개체로 삼고 있는 것도 재미있게 읽은 부분입니다. 앞서도 적었습니다만, 질 들뢰즈의 경우는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을 논한 <감각의 논리; http://blog.joins.com/yang412/13157096>를 일독한 바 있어 그나마 조금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던 것을 보면 역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텍스트를 읽은 다음에 다시 읽어야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