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 논어 3 - 물살처럼 도도히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3
심경호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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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교수님의 동양고전강의 시리즈 <논어>의 3권에는 위령공(衛靈公), 계씨(季氏), 양화(陽貨), 미자(微子), 자장(子張), 요왈(堯曰)편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물살처럼 도도히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라는 부제는 격동기를 살아내는 군자로서 지켜야할 덕목들,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지혜에 관한 담론을 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군자라고 하면 요즈음의 시각으로 보면 고답적이고 고루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만, 세상사는 이치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면 품격있는 신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위령공(衛靈公)편의 제18장을 보면, 君子病無能焉不病人之不己知也(군자병무능언이오 불병인지불기지야니라)라고 했습니다. 해(解)를 보면, “군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병으로 여기지,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병으로 여기기 않는다.(58쪽)”라고 했고, 역시 위령공(衛靈公)편의 제20장을 보면, 君子求諸己小人求諸人(군자구제기소인구제인이니라)라고 해서 “군자는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62쪽)”라고 하는 대목이나, 제22장에 나오는 君子不以言擧人不以人廢言(군자불이언거인하며 불이인폐언이니라)라고 해서, “군자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등용하지 않고 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그의 좋은 말을 버리지 않는다.(66쪽)”라는 대목은 요즈음 신사라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도 논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으로 치면 위정자 혹은 지도자를 이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양화(陽貨)편의 제6장에서 恭則不侮寬則得衆信則人任焉敏則有功惠則足以使人(공즉불모하고 관즉득중하고 신즉인임언하고 민즉유공하고 혜즉족이사인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공손하면 모욕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게 되고, 신실하면 남이 나를 의지하고, 민첩하면 공적을 세우고, 은혜로우면 충분히 사람을 부릴 수 있다.(160쪽)”라고 해설하셨습니다.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요즈음의 저의 심경이라고 할 대목도 발견했습니다. 양화(陽貨)편의 제5장, 子曰夫召我者而豈徒哉如有用我者吾其爲東周乎(자왈, 부소아자이기도재리오 여유용아자인댄 오기위동주호인저)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부르는 것이 어찌 공연히 하는 일이겠느냐? 나를 써 주는 자가 있으면 나는 동쪽의 주나라를 만들 것이다.’(158쪽)”라고 해석하셨는데, 이 구절은 노나라의 계씨의 가신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반란을 일으킨 다음에 공자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이 부름에 응하려 하자 자로가 왜 가시느냐고 따지자, 이처럼 답변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천하에 허물을 고칠 수 없는 사람이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결국은 공산불요가 잘못을 고치지 못할 위인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공자와 같은 성인의 경우도 진퇴를 결심하는 일이 참으로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가슴에 품은 포부는 큰데 불러서 써주는 곳을 찾지 못한 답답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직마다의 특성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진심을 다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마침 양화(陽貨)편의 제4장 子之武城聞弦歌之聲夫子莞爾而笑曰割鷄焉用牛刀(자지무성하사 문현가지성하시다. 부자완이이소왈, 할계언용우도리오)라는 대목입니다. “공자께서 무성에 가시어 현악에 맞춰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으셨다. 공자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소위 문화예술의 정치를 뜻하는 현가지성(絃歌之聲)과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의 우도할계(牛刀割鷄)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공자께서 제자들과 함께 자유가 맡아 다스리는 무성에 갔는데, 큰 정치의 도구라고 할 예악으로 작은 고을 무성을 다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는 자유의 통치기술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자유의 인물이 무성이라는 작은 고을에 머물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데 기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직을 다스리를 기술은 원리는 조직의 크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예악은 어느 조직이라도 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심경호교수님이 해설로 읽는 동양고전시리즈 <논어> 읽기를 마쳤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일독한 셈입니다. 곁에 두고 때때로 읽어 일상의 삶에 곁들여 새기다 보면 이해의 깊이가 더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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