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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밍고의 미소 ㅣ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2
스티븐 J. 굴드 지음, 김명주 옮김 / 현암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진화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읽어오고 있으면서도 막상 스티븐 제이 굴드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연학을 주제로 한 그의 에세이는 1974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자연사 박물관이 펴내는 월간지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되어 왔다고 하는데, 300여 편에 달한다고 합니다. 27년의 기간 동안 써온 것이라고 한다면 매월 한편씩의 에세이를 써온 셈입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에세이라기보다는 한편의 논문이라고 할 정도로 정교하고 풍부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쓰인 글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나는 에세이를 쓸 때 하나의 원칙을 따른다. 타협은 없다. 즉 전문용어를 명확하게 정의하거나 없앰으로써 접근성을 높이되 개념은 결코 단순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하는 자신만의 글쓰기 원칙에 충실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997년에 <다윈이후>라는 에세이집으로 묶어서 내놓은 이래 2002년 <I have landed>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권의 책으로 출판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다윈 이후(1998)>, <판다의 엄지(1998)>,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1998)>, <여덟 마리의 새끼 돼지(2012)>에 이어 <플라밍고의 미소>가 다섯 번째로 소개되었습니다. <플라밍고의 미소>는 1985년에 출간된 에세이집이기 때문에 1980년대 초반에 쓰인 글들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생생한 느낌을 얻게 되는 것은 앞서 소개한 굴드의 글쓰기 원칙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자신이 에세이집을 낼 때의 시점과 관련하여 통일된 주제가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플라멩고의 미소>에서는 ‘연쇄적인 함의를 낳는 한 가지 특정한 발견’이라는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궤도를 벗어난 소행성, 혹은 혜성 소나기가 백악기 멸종을 일으켰다는 가설은 지금 ‘매우 있음직한’ 일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토록 철저하게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생명의 재구성은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심지어는 2,500만년 내지 3천만 년이라는 규칙적인 주기로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라는 점입니다. 주제와 관련된 사실을 광범위하게 다룬 글은 이 책의 15번째 에세이 ‘죽음과 변모’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8부 ‘멸종과 연속성’에서는 곳곳에서 대규모 멸종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구환경은 새로운 생명체로 채워져 왔다는 점에 대하여 적고 있습니다. 당시 고생물학이나 진화생물학 분야에서는 멸종이 그만큼 중요한 주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플라멩고의 미소>에 실린 글들이 모두 생물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만, 이례적인 에세이 한편이 있습니다. 바로 14번째 에세이 ‘양극단의 소멸’입니다. 이 에세이를 쓸 무렵 미국 프로야구계에서 4할을 치는 타자를 볼 수 없게 된 현상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굴드가 이 주제와 관련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 직업은 고생물학자다. 생명의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생의 대부분을 장기적 경향에 대해 생각하면서 보낸다. (…) 우리가 경향을 설명할 때 하나의 미묘하지만 강한 편향에 사로잡힌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극단은 우리를 매혹시키고, 우리는 극단을 시스템 내의 특별한 값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그 극단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 하지만 우리가 극값을 더 큰 시스템이 갖는 한계치로 간주한다면 매우 다른 종류의 설명이 나올 수 있다.(270쪽) 얼마 전에 읽은 최재승교수님 등의 <백인천 프로젝트; http://blog.joins.com/yang412/13216425>가 출범하게 된 배경이 된 에세이라고 합니다.
실험을 하다보면 간혹 튀는 값을 만나게 되는데, 이 값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간혹 버리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과학이 과학답기 위한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은 꼭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데이터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고 틀과 맥락이 필요하다. (…) 과학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도 그런 작업의 본질적인 어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 틀림없다.(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