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양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7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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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읽기 위하여 공부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대비가 되는 <좁은문; http://blog.joins.com/=yang412/13192256>의 저자 앙드레 지드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상의 양식>은 1897년에 발표되었는데, 작가가 1927년판 서문에서 “나는 문학의 견딜 수 없을 만큼 인공적 기교와 고리타분한 냄새로 찌들어 있던 시기에 이 책을 썼다. 당시 나는 문학이 다시금 대지에 닿아 그저 순박한 맨발로 흙을 밟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겼다.(12쪽)”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을 쓸 무렵 결혼하여 생활의 안정을 이룬 저자는 예술작품으로 승화될 작품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 문학의 일반적인 형식과는 달랐던 이 작품은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문학계의 분위기를 지드는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프랑스 문학, 특히 이상하게도 낭만주의 문학은 슬픔을 찬미하고 배양하고 전파해왔다. 가장 영광스러운 행동에 나서도록 인간을 부추기는 저 능동적인 슬품이 아니라 이른바 우수라고 일컫는, 시인의 이마를 창백하게 만들어 돋보이기 하고 눈빛에 향수가 깃들게 하는 일종의 물렁물렁한 영혼의 상태 말이다.(266쪽)” 오직 당시 열아홉 살이던 비평가 에드몽 잘루만이 이 책의 가치를 볼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다음처럼 평했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책들 중 하나이다. (……) 우리가 가장 초조하게 기다려왔고 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다. (……) 금세기가 베르테르와 르네의 영향을 받았듯이 아마도 다음 세기의 문학은 이 책의 주인공인 메날크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지상의 양식>을 읽으면서 먼저 눈에 띈 단어는 ‘선택’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무수한 선택의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생각해보면 선택이란 어떤 것이든 무서운 것이다. 의무를 인도해 주지 않는 자유란 무서운 것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낯설기만 한 고장에서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거기서 ‘자신만의’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발견이란 오직 자기 만을 위한 것이다.(20쪽)” 그래서 선택을 신중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선택이 내게는 고르는 것이라기보다는 고르지 않는 걸 버리는 것으로만 보였다. 시간이 좁다는 것과 시간이 하나의 차원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끔찍한 마음으로 깨달았던 것이다.(76쪽)”

 

“대낮인데도 켜놓은 등불 앞에서 나는 시간을 잊은 채 행복감에 잠겼다.(85쪽)” “욕망들이여! 아름다운 욕망들이여! 나는 너희에게 짓이겨 터진 포도송이를 가져다주리라.(111쪽)” “존재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쾌락적인 것이 되었다. 삶의 모든 형태를 나는 맛보고 싶었다.(127쪽)” ‘지상의 양식’을 통하여 저자가 바라보는 세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새로운 인생’에 담긴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하여 태어났음을 물론, 자연의 모든 것이 가르쳐주고 있거늘’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런 점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방식이나 삶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뜻하는 노마디즘(nomadism; 유목주의)이라는 개념에 관한 이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노마디즘은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1968년 발표한 <차이와 반복>이라는 저서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여 철학용어로 쓰이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나의 에고이즘을 비난했다. 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힐난했다. (…) 한 사람에게 사랑을 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서 그것을 빼앗는 결과가 될까 봐 나는 나 자신을 줄 뿐이었다. (…) 자연에 대하여 그랬듯이 여기서도 유목민인 나는 어디서도 멈추지 않았다.(86쪽)”

 

<지상의 양식>에는 지드가 젊은 시절 발표한 ‘지상의 양식(1897)’과 그로부터 38년이 지나 발표한 ‘새로운 양식(1935)’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옮기신 김화영교수님은 작품해설을 통하여, ‘지상의 양식’에서 우리는 저자인 지드 자신, 다시 말해서 그가 만난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사건들이 만들어낸 한 인간의 다면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리하였고, ‘지상의 양식’의 흐름과 영감에 잇닿아 있는 ‘새로운 양식’에서는 전작의 역동성과 함께 희열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죽었다.’라고 한 니체와는 달리 지드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245쪽)”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법칙에 좀 더 고분고분 따르도록 해야 해. 그러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거야.(248쪽)”라고 말하는 신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 신학자들이 궤변으로 신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신은 나를 붙잡고 있다. 나는 신을 붙잡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한다.(251쪽)”고 고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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