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 우리가 읽고 싶어도 결코 만날 수 없는 위대한 책들의 역사
스튜어트 켈리 지음, 정규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읽은 베르너 풀트의 <금서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273020>에서는 사회적 여건으로 배포되었던 책을 거두어 태워버리거나, 추가 배포가 금지된 책들과, 혹은 저자가 작성한 원고를 다양한 이유로 출판되지 않아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지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여건으로 금서목록에 올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여건의 변화로 금서목록에서 해제되어 지금은 많은 독자들을 만나는 책에 대한 사연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금서목록에 있다는 것은 어디엔가 책이 보관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읽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겠습니다만, 언젠가 존재했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현존하지 않는 책들의 경우는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에딘버러의 독서광 스튜어트 켈리는 세상에 존재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는 책들의 흔적을 조사하여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The Book of Lost Books>으로 정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고전 그리스 극작품에 빠져들었던 스튜어트 켈리(Stuart Kelly)는 펭귄 판으로 나온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을 모두 모았다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스퀼로스는 생전에 여든 편이나 되는 극작품을 썼다는 것이고, 소포클레스의 극은 달랑 두 권이 아니라 서른세 권, 더욱 놀라운 것은 “당대 최고의 평판을 누린 비극 작가였던” 아가톤의 작품은 단 한 개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명적으로 시작한 작업이 유실된 고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걸작, 대작이 될 뻔한 미완성 원고 등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또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위대한 작품들에 얽힌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었고, 그 성과가 바로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작품 혹은 주목을 받았을 작품들이 현세에 전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고 합니다. 원고쓰기를 마친 작가가 무슨 이유에서든지 원고를 없애기도 하고, <금서의 역사>에서 읽은 것처럼 권력을 쥔 사람이 세상의 모든 책을 거둬들여 없애버리기도 하며,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작가가 세상을 뜨는 경우에는 미완성으로 남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경우는 작가가 출판사에 보낸 단 한부의 원고가 세상에 빛을 보기도 전에 화재 등 사고로 망실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아이스퀼로스의 작품들이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지은 도서관에는 20만개의 두루마리를 소장하게 되었는데, 그때 프톨레마이오스는 엄청난 돈을 아테나이에 지불하고 아이스퀼로스의 전작집을 소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면서 640년 이곳을 지배하던 자가 “하느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들은 불경스럽거니와, 일치한다 해도 굳이 없어도 괜찮은 것이다.”라는 이유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수많은 두루마리들과 함께 아이스퀼로스의 원본도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책을 만든 것도 사라이고, 책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도 사람인 셈인 것입니다.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작가들로부터 중국의 공자와 마호메트의 전기를 쓴 아라비아의 무슬림학자 이스하크까지, 서양 문학의 거장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로부터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자연주의 작가들을 거쳐 카프카, 엘리엇, 헤밍웨이, 비트 세대인 윌리엄 버로즈와 조르주 페레크까지 시대별로 구분하여 유명작가들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작품들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남긴 모든 기록을 한 장도 읽지 말고 불살라 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받은 친구 브로트가 카프카의 소원대로 해주기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브로트는 “카프카는 자신이 붙좇기를 거절할 것란 사실을 늘 알고 있었고, 또한 자기한테 그런 지시를 전달함으로써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들을 잘 보전해 줄 거로 아는 유일한 인물에게 맡겨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457쪽)”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읽을거리입니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이 책을 옮긴 정규환교수님께서 앞서 적은 ‘붙좇다’와 같이 쉽게 만날 수 없는 우리말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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