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력서 - 오만불손한 지배자들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이정모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대학을 졸업하고 군경력까지 계산한다고 하면,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 아홉 번째 직장인 셈이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력서를 제출했다고 하더라도 아홉 번인데, 그 사이에 적지 않은 곳에 응모하느라 제출한 이력서가 적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력서를 보완하여 새롭게 작성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경력은 물론, 학회에서 발표한 초록목록, 논문 그리고 저서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추가할 일들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공식적인 기록은 초등학교 입학부터 정리하기 시작하기도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생물종 가운데 인간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력서에 담는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요? 가능하기는 할까요? 일단은 출생부터 적어야 하겠지요? 그래도 문자를 만들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고부터는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는 있겠다 싶지만, 그 이전의 시기는 아무래도 고고학에 의존하여 추정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대단한 일에 도전한 분이 독일언론인 볼프 슈나이더입니다. 그는 200만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이력을 <인간이력서>라는 한권의 책으로 요약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저자는 지구에 남긴 최초의 가족사진이라 할 수 있는 세렝게티 변두리의 발자국 화석에서부터 불의 발견, 농업의 발명, 세계 최초의 도시 건설과 제국주의 시대, 산업혁명과 세계 대전을 거쳐 오늘날의 소비문화 확대에 이르기까지의 200만 년의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전쟁, 평화, 문명, 진화, 인권, 홀로코스트, 환경오염 등등 우리 ‘인간’에 대한 거의 모든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인간에 의해 쓰인 ‘인간 역사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요약하였습니다. 저자가 인간의 이력을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배경은 “혹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할 때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한 진단은 대부분 우울하다. 게다가 인간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성취하려 한다는 말은 결정타로 들린다.(12쪽)”라는 부분에서 읽히는데, 우울하게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한 인류가 유럽대륙으로 진출하여 자리를 잡게 되고, 산업혁명을 거쳐서 유럽의 제국주의가 신대륙으로 아시아로 그 세력을 확대해나가는 과정이나 철도, 비행기, 우주선 등 새로운 문명을 일구어나가는 과정을 유럽의 시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럽문명에 영향을 미친 아시아문명은 그저 근대에 유럽의 침략을 받아 무너지는 모습만 보았다면 진정한 인류의 이력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저자는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이 알려지지 않은 지구를 돌아다니게 한 추동력은 무엇인가? 500년에 걸친 유럽의 세계지배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164쪽)’ 라는 의문을 던지고 ‘그것은 골드러시로 요약되는 원자재와 시장의 확보에다가 선교 강요 및 인종 우월주의’였다고 정리하고 있지만 그것을 비판하는 분위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력서는 냉정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5장까지는 인류의 출현에서부터 지금까지 발전해온 과정을 다루고 있다면, 6장과 7장은 과거를 비추어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량과 수자원 그리고 에너지 자원을 지금처럼 물쓰듯 쓰다가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석유자원의 미래와 관련하여 저자는 “지구자원은 남김없이 고갈될 것이다. 전쟁이 임박했고, 우리는 후손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바보들의 배에 함께 타고 있다.(317쪽)”고 적고 있습니다. 저자는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의 종말을 예방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우주적 재앙이나, 이성을 잃은 지도자에 의한 핵의 위험, 그리고 바이러스와 같은 생물학적 재앙을 막을 힘은 없다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저자처럼 인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한쪽의 견해에 몰입하다 보면 자칫 중심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 http://blog.joins.com/yang412/11893963>를 읽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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