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 논어 1 - 옛글을 읽으며 새로이 태어난다 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1
심경호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입시위주로 짜여 지는 요즈음의 교육과는 다소 차이가 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을 공부할 기회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게다가 이과반을 거쳐서 입학한 대학의 교양과정에서 철학과 종교철학 과목을 어떻게 받았던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철학의 윤곽도 잡아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한문교육의 틈새를 묘하게 빠져나온 세대인지라 한문도 귀동냥으로 배웠기 때문에 동양 고전을 읽을 기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언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기회가 되지 않던 터에 심경호교수님의 <논어>를 읽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논어』를 읽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나를 세우고 남을 열어 주며 세상을 밝힌다”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먼저 일러두기를 챙겨 읽어봅니다. 심경호교수님의 <논어>는 20편 498장 가운데 현대에도 특별히 의미가 있는 장을 선별하여 3권으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1권은 ‘옛글을 읽으며 새로이 태어난다’라는 부제로 <논어>의 학이(學而), 위정(爲政), 팔일(八佾), 이인(理仁), 공야장(公冶長), 옹야(雍也), 술이(述而), 태백(泰伯편)을 수록하였고, 2권에는 ‘사랑한다면 깨우쳐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부제로 자한(子罕), 향당(鄕黨), 선진(先進), 안연(顔淵), 자로(子路), 헌문(憲問)편을 수록하였으며, 3권에는 ‘물살처럼 도도히 흘러가는 세상속에서’라는 부제로, 위령공(衛靈公), 계씨(季氏), 양화(陽貨), 미자(微子), 자장(子張), 요왈(堯曰)편을 수록하였습니다. 각 글은 ‘번역 및 해설’과 ‘원문 및 주석’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번역 및 주석과 해설은 주희의 신주(新注), 즉 <논어집주>와 한나라․당나라 때 이루어진 주소(注疏), 즉 <논어주소> 그리고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와 현대학자들의 연구를 근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1강은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면 기쁘지 아니한가!’로 해(解)하는 학이편의 제1장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입니다. 이 구절은 학교에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익히 알고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논어의 주요 구절은 일상에서 흔히 들어서 뜻을 익히고 있어 읽어가면서 반갑다는 느낌이 들곤합니다만, 역시 익숙하지 않는 구절들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뜻을 새기다보면 책읽는 호흡이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과 연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2008년에 제2차 광우병파동을 겪으면서 일부 전문가들이 보여준 이상한 행태와 연관시켜 이해한 앎에 관한 구절들입니다. 먼저 위정편의 17장입니다.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회여지지호인저, 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시지야니라)이며, “유야! 너에게 앎에 대해 가르쳐 주겠노라.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80쪽)”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술이편의 27장입니다. 多聞 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다문하여 택기선자이종지하며 다견이지지지지차야니라)이며, “많이 듣고서 그 가운데 좋은 것을 가려서 따르고 많이 보고서 기억해 둔다면 완전한 지식의 버금은 될 것이다.(254쪽)”라고 해석합니다. 전자에 대하여 저자는 주희의 풀이를 인용하였습니다. “안다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면, 비록 앎이 완전하지는 않다 해도 스스로를 기만하는 폐단은 없을 것이므로 앎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모르는 것에 대한 자각으로 앎을 추구한다면 앞으로 알아 나갈 방도가 생길 것이다.(80쪽)” 후자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조선 인조 때 장유(張維)는 당시의 옹졸한 지식인들이 자기 소견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일체를 거짓으로 여기며 무시한다고 비판했다.”고 소개하면서 “다문다견을 통해 학문의 고착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두 개의 구절을 연관지어보면, 다양한 주장들을 서로 비교 검토함으로써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하여 아예 검토대상에서 빼버린다면 그 앎은 완전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밖에도 요즈음의 저 자신을 생각해본다면 자한 12장에서 “나는 제값 주고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39쪽)”라고 하신 공자님 말씀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겠습니다. 저자는 해제를 통하여 공자는 이상주의자였지만, 당시 세상이 몹시 어지러워 이상을 펼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는데, 요즈음 세상 역시 몹시 어지러운 지경이고 보면 <논어>의 사상을 오늘에 맞게 해석하여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