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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낯선 시간들에 대한 진실
애덤 풀스 지음, 김현우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알게 된 사람과 시나브로 엮어들어 서로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3자의 눈으로 지켜보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의 낯선 시간들에 대한 진실>은 정말 볼 일 없어 보이는 한 남자가 우연히 한 가족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 애덤 풀스는 이 작품에서 관심을 주는 사람이 별로 없이 외롭게 살던 스물여덟살 젊은이 하워드와 뛰어난 암기력으로 기억력 챔피언전에 도전하는 열 살짜리 천재 소년의 솔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공감대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남자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주는데, 특히 시합에 임해서 갑작스럽게 패닉상태에 빠진 솔을 시합장에서 빼돌려 파국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해주지만, 솔의 부모는 시합을 망쳤다면서 하워드를 원망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특히 기억력이 뛰어난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어 읽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의 삶을 다룬 몇 가지 책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http://blog.joins.com/yang412/3189206>에서는 타고난 기억능력을 가진 질 프라이스의 기억능력을 설명하고 있고,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76657>에서는 고도로 발달한 공감각적 능력의 소유자였으며, 그런 능력을 토대로 자신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사진처럼 선명한 이미지로 변환시켜 머릿속에 간직했다가, 언제든 필요할 때에는 다시 떠올릴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남자 솔로몬 셰르솁스키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낯선 시간들에 대한 진실>의 주인공 솔은 셰르솁스키과 흡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상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변환시켜 기억하는 방식인데, 솔의 경우는 훈련을 통하여 기억능력을 보강하지만, 나이 탓인지 시합이 주는 중압감을 털어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주인공 하워드의 경우 헬스센터에서 잡일을 하고 있는데, 시간관념이나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 등에서 문제가 있는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결국은 직장에서 쫓겨나는데, 그래도 그의 장점을 알아주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사람들이 큰 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헬스센터 회원 도슨부인이 갑자기 쓰러지는 순간 하워드의 응급처치로 죽음은 면하지만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고 마는데, 아들도 찾아오지 않는 도슨부인의 병상을 매일 같이 찾아 깨어나기를 기원합니다. 하워드가 도슨 부인을 찾는 이유는 작가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들여다본다. 그 몸 안 어딘가에서 도슨 부인이 잠을 자고 몰래 숨어서, 살금살금 빠져나가고 있었다. 동굴 안의 결정처럼 숨어 있었다. 그래서 한바탕 경련을 일으키고는 순식간에 떠난 어머니와 달리, 도슨 부인은 남들의 보살핌을 받는 것도 하나의 단계라는 듯 세상을 떠나기 위한 절차를 차곡차곡 밟으며 떠나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시간에 대한 희망, 계속 가슴 졸이며 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아무도 죽지 않고, 도슨 부이도 결국 다시 돌아올 거라는 희망.(43쪽)”
이야기는 도슨 부인이 쓰러진 12월 14일에서 3개월을 훌쩍 건너뛴 3월 12일 헬스센터에서 해고된 하워드는 매일 밥을 먹는 식당주인 알프의 제안으로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지만 끓는 기름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무렵 도슨 부인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도슨 부인이 죽음을 맞은 뒤에야 찾아온 아들 내외는 그동안 어머니를 돌봐온 하워드로부터 묘하게 끌리는 점을 발견하고 시험을 앞두고 있는 솔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같이 지낼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도슨 부인의 며느리 바바라는 “아이와 아이 아버지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면서 레스의 긴장이 전해져 아이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막아 주고 있었다.(93쪽)”라고 느꼈기 때문에 남편 레스의 제안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수한 하워드나 도슨씨 가족과는 달리 러시아인 바리아는 물건을 훔치고 하워드를 이용해서 러시아 친구를 영국으로 들어오도록 꼼수를 부리는 등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후반부는 기억력대회 첫날 시험을 망친 솔이 이튿날 시합이 시작되면서 장기에 속하는 카드순서 맞추기에서 암기조차 되지 않아 혼란에 빠지는 순간, 하워드가 솔을 이끌고 시합장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워드는 바리아의 집을 거쳐서 알프의 도움으로 스코틀랜드로 솔을 이끌고 가는데, 솔의 부모의 신고로 두 사람을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됩니다. 이들의 여행은 어릴 적 학대를 일삼던 아버지를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우리 아들은 안 그래. 걔는 달라.’ 이렇게 말이다. 아이한테도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뭣 때문에 도망을 친거냐?”라는 아버지 말씀은 오랜 세월 하워드의 마음 한 켠에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하워드와 솔 두 사람은 여행을 통하여 자신을 이해하고 주변을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옮긴이는 과거의 매듭을 푸는 것은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용기라는 점, “그 용기를 갖게 하는 건 나와 비슷한 상처를 지닌 타인 혹은 나의 외로움을 알아봐 주는 소중한 타인의 존재라는 것. 그 모든 것이 결국엔 이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그들의 여정에서 발견한 ‘낯선 시간’을 통해 찾아낸 하나의 진실일 것(493쪽)”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