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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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86년에 발표된 <소설의 기술>은 밀란 쿤데라가 소설에 대한 성찰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첫 번째 책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설에 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들과 대담, 그리고 연설문들을 엮은 일종의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것입니다. 먼저 에세이에서는 카프카, 플로베르, 조이스, 톨스토이, 세르반테스, 곰브로비치 등 최고의 문학가들의 작품을 인용하면서 소설쓰기, 나아가 소설을 통하여 서구의 문화적, 철학적 흐름과 전통, 그리고 인간 실존에 대해 성찰하고 탐구하는 방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 비평가 크리스티앙 살몽과 두 차례에 걸쳐 가졌던 대담의 내용을 정리하여 2부 ‘소설의 기술에 관한 대담’과 4부 ‘예술의 구성에 관한 대담’에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살몽과의 대담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핵심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작품에서 역사를 어떻데 다루고 있느냐는 살몽의 질문에 대하여 쿤데라는 나름대로의 몇 가지 원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역사적 정황들을 최대한 경제적으로 취급한다. 둘째, 여러 역사적 정활등 중에서 등장인물들의 실존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셋째, 역사적 연대기는 사회의 역사를 기록하지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가장 광범위한 원칙은, 역사적 정황은 소설 속 인물에게 새로운 실존적 상황을 만들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역사는 그 자체가 실존적 상황으로 이해되고 분석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개별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에 대한 솔직한 답도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라고 내용에서 ‘덫’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삶의 덫이라는 것은 사람들도 항상 알고 있었죠. 사람은 원하지 않았음에도 태어났고 스스로 택하지 않은 육체에 갇혀 있다가 결국 죽지요. 그러나 세상이라는 공간은 영원한 탈출의 가능성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우리 시대에 와서 세계는 우리 주위로 갑자기 좁아져 버렸습니다. 세계가 덫으로 바뀌는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 1914년의, 이른바 세계대전이었을 거예요. (중략) 모든 재앙은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 따라서 우리는 점점 더 외부에 의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고 또 점점 우리를 서로 닮아 가게끔 만드는 상황에 의해 결정되리라는 사실 앞에서 공포감을 한층 더 웅변적으로 표현해주죠.(44쪽)” 다시 새겨 읽어도 알쏭달쏭한 것 같습니다.

 

특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웃음과 망각의 책>, <불멸> 등의 작품 속에 숨겨진 리듬과 화성이라는 음악적 요소나 수학적 체계가 담겨져 있다고 하는데, 음악적 요소는 아무래도 음악가였던 아버지로부터 받은 전문적인 음악 수업을 소설에 접목한 것이라고 합니다. 문학과 음악과의 관계에 대하여 쿤데라는 “소설을 구성한다는 것은 음악처럼 여러 다른 정서에 공간을 배열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쿤데라의 작품에 감추어진 수학적 구조는 체코의 한 비평가가 쓴 ‘<농담>의 기하학’이라는 글에서 처음 지적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수학적 구조에 대하여 “이러한 ‘수학적 질서’라는 것은 형식의 필요로부터 자연스럽게 오니 미리 계산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127쪽)”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소설의 기술> 6부에는 ‘소설에 관한 내 미학의 열쇠어들’이라는 제목으로 쿤데라가 자신의 작품에서 좋아하는 단어를 일종의 사전형식을 빌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체코어로 쓴 <농담>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쿤데라가 가졌던 불편한 심정에 대하여 <데바>의 편집자인 피에르 노바의 권유로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단어에 대하여 쿤데라는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내 소설에서 인물들의 행위는 대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이루어지지지만 나는 내 소설에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만들어진 단어인 이 말은 너무 젊고 역사적 뿌리가 없으며 아름답지도 않다. (중략)그래서 내 작중 인물들의 나라를 지칭하기 위해 나는 언제나 보헤미아라는 낡은 단어를 쓴다.(206쪽)” 쿤데라의 이런 설명을 인용하여 권오룡교수님은 보헤미아 문학론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고향에 정착해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들, 보헤미안들의 삶의 무대는 세계 로 흩어질 수밖에 없고 세계로 확대된 상상의 공간을 따라 펼쳐지는 것이 보헤미아 문학의 특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박성창 외 지음, 밀란 쿤데라 읽기, 158쪽)

 

막상 <소설의 기술>을 읽고보니 쿤데라의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고 그의 작품세계를 가늠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제 리뷰를 읽는 분들께서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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