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 양장본
김승옥 지음 / 범우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의 방에는 대입 논술을 준비하면서 읽은 책들이 여전히 책꽂이 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무렵 아내는 아이와 같이 책을 읽었던 모양입니다만 저는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아이들이 무슨 책을 읽었는지 챙겨보곤 합니다.

 

김승옥님의 <무진기행>에 눈길이 갔던 것은 최근에 짙은 안개 때문에 일어났다는 헬기사고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게 읽기 시작한 김승옥님의 단편집 <무진기행>에는 ‘야행’, ‘서울․1964년 겨울’, ‘역사’ 그리고 ‘무진기행’이 실려있습니다. 오래된 판본이라서 책갈피가 조금 변한 느낌에 묵은 듯한 종이냄새가 이야기 속 분위기에 제대로 쏠려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이야기는 서울에 둥지를 틀었던 70년대 초반보다도 10년 가까이 전의 시점입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세월이 요새보다는 느리게 흘렀던 것 같은 느낌이라서 작가가 묘사하는 서울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서울․1964년 겨울’의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하는 포장마차 분위기는 요즘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종일 병동실습으로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느라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눈앞의 포장마차를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합을 하나 굽고 소주를 반병 시켜 한 잔을 마시면 온몸에 따듯한 열기가 퍼지면서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느낌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손님이라도 있으면 눈인사가 오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인사 끝에 그날 뉴스거리라도 화제에 오를라치면 판이 커지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이루어진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을 다룬 이야기가 바로 ‘서울․1964년 겨울’입니다. 나이가 든 탓인지 일과가 끝나면 바로 집에 들어갑니다만, 젊었을 적에는 공연히 명동이나 종로를 쏘다니곤 했습니다. 대학원에 다닌다는 안이라는 젊은이이가 사관학교 입시에서 미역국을 먹고 백수생활을 하는 김이라는 젊은이에게 “밤거리에 나오면 뭔가 좀 풍부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46쪽)”라고 묻는 것처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음의 열기를 쏟아내기 위해서였을까요? 이런 젊은이들의 생생한 분위기와는 달리 뇌막염으로 죽은 아내를 해부실습용으로 팔았다는 사내는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월부 책장사를 한다는 사내 나이가 중년에 이르렀다면, 아내의 죽음으로 바닥이 난 삶의 희망을 되살려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버릴 세상의 마지막 모습을 젊은이들과 같이 지켜보고 싶다는 안타까운 심정이었을 것 같아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에는 친척집에 얹혀살기도 하고, 하숙집을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역사’라는 단편이 그리고 있는 다양한 하숙집 분위기에 관심이 가면서도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하숙집이 있는 동네에 따라서 하숙생의 성분이 다른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다닌 대학은 경운궁 앞에 있어 대학생들보다는 회사원들, 혹은 재수생들이 뒤섞여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응답하라 1994>처럼 대학가 하숙집처럼 하숙생들 사이에 공감대가 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쩌다 하던 하숙생 송별파티에서 계란껍질을 술잔삼아 소주를 나누어마시던 기억은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이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무진기행’ 이야기로 넘어가면, 일단 ‘무진’이라는 곳이 어딜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무진기행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같은 생각을 해보았을 것 같습니다.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무진은 바닷가에 가까운 동네지만, 정작 바다는 수심이 얕아서 항구가 들어설 수 없는 곳입니다. 무진이라는 곳이 무안, 광양 혹은 순천이라고들 하는데, 그 가운데는 작가가 성장한 순천이 가장 가깝다고들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광양이나 순천을 전라선으로 갈 수 있고, 무안은 목포로 가는 편이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김승옥님이 언젠가 인터뷰를 통하여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가치파괴와 전통질서가 무너진 가운데 새로운 질서가 생기지 않아서 안개가 끼어 있는 곳이 바로 무진이다.”라고 설명한 것처럼 굳이 어디라고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의 설명은 소설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103쪽)”

 

내서 무진을 떠나 서울에서 얻은 것들은 무진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들일까요? 그들 가운데 특히 인숙과의 요즘말로 치면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은 단지 그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까요?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살아온 길로 안내하겠다는 결정은 자신이 살아온 삶이 옳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인숙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보다는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아내에게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의문은 여전히 남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요즈음이라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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