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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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신이치교수가 쓴 <생물과 무생물 사이; http://blog.joins.com/yang412/10012343>에서 적지 않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인용한 에르빈 슈뢰딩거교수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http://blog.joins.com/yang412/12962410>를 읽고 긴 리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짧은 탓에 수박 겉핥기가 되고 말았습니다만 생명현상에 대한 슈뢰딩거교수의 탁월한 설명에 감동했습니다. 신이치교수의 책을 즐겨 읽게 되는 것은 어렵기만 한 생명과학 이야기를 일상에서 만나는 현상과 잘 버무려서 쉽게 설명하는 특유의 글쓰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연이 닿아서였을까요? 또 다른 경로를 통해서 슈뢰딩거교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교수가 쓴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어떤 독자께서는 고양이에 관한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고 적기도 했습니다만,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꾼다’는 부제를 보면 내용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셔교수는 ‘케플러의 난제’를 들고 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서 신이치교수님의 글쓰기를 예로 든 것처럼, 자신의 전문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일은, 그 분야를 연구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고들 이야기합니다. 태양계의 행성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많은 관측의 결과를 바탕으로 어렵게 계산해낸 결과로 “행성의 궤도는 타원형이다.”라는 케플러의 제1법칙을 정리해냈지만, 그 내용을 간결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데서 ‘케플러의 난제’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즉, ‘케플러의 난제’란 대중에게 과학을 소개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의 경구입니다. 저 역시 2008년의 제2차 광우병파동을 겪으면서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이려고 고안한 실험이라고 합니다. 실험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고양이가 상자 속에 갇혀 있다. 이 상자에는 방사성 핵이 들어있는 기계와 독가스가 들어있는 통이 연결되어 있다. 실험을 시작할 때 한 시간 안에 핵이 붕괴할 확률을 50%가 되도록 조정한다. 만약 핵이 붕괴하면 독가스가 방출되어 고양이가 죽는다.(12쪽)” 슈뢰딩거는 이 상황에서 파동함수의 표현이 고양이가 살아 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의 결합으로 나타내는 것을 비판하며, ‘죽었으며 동시에 살아 있는 고양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며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물리학에서 관찰하는 현상을 생명과학과 연결하여 증명하려는 시도가 적절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을 설명하기 위한 가상의 실험으로 설명을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과학사를 전공하고 있는 피셔교수는 과학계에서 전해지는 다양한 아포리즘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리학 분야의 아포리즘은 생물학분야에 비하여 여전히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아무래도 물리학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탓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거나 과학계의 뒷이야기도 흥밋거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유전의 기본 원리에 대한 멘델의 실험이 오랫동안 묻혀있던 이유는 당시 과학계의 변방에 속했던 독일어로 논문을 썼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사실은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평범한 제목이 붙은 그의 논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멘델이 유전학의 시조로 알려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자연과학자 윌리엄 베이트슨이 멘델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멘델이 독일어로 애매하게 표현된 내용을 모두 명료한 언어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역시 번역은 창작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깨닫게 되는 대목입니다.

 

막스 프랑크가 착안한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생각을 바꾸게 만든다고 해서 곧바로 관철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대자들이 서서히 모두 소멸하고 처음부터 그 진리에 익숙한 나중 세대가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서 가능하다.(304쪽”는 프랑크의 원리를 발견한 것도 이 책을 읽은 소득이라고 하겠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는 수많은 과학의 아포리즘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답을 구하지 못한 문제가 있으시다면 이 책에서 답을 구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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