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스운 사랑들 ㅣ 밀란 쿤데라 전집 2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 작가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바탕으로 쓴 희곡 <자크와 그의 주인>에 붙인 변주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나 자신을 정의해야 한다면 나는 극도로 정치성을 띤 세상의 덫에 걸려든 쾌락주의자라고 말하겠다.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투영하기에 어느 것보다 애착이 가는 작품인 <우스운 사랑들>은 바로 그 상황을 얘기한다. 묘한 우연이다. 그 단편들(1960년대에 쓴 것들이다.) 중 마지막 작품을 러시아군이 도착하기 사흘 전에 끝냈으니 말이다.(밀란 쿤데라 지음, 자크와 그의 주인, 16쪽)”
<우스운 사랑들>에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일곱 편의 단편이 담겨있습니다. 심오하다기보다는 경박한 쪽에 가까운데 언젠가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누구도 웃지 않으리’는 흔히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기를 더해가다 보면 결국은 수습할 수 없게 된다는 만고의 진리를 적용한 것인데, 다들 총대매기를 피하다가 막차를 타게 된 사람이 결국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웃지 못할 상황입니다. 생즉사(生卽死)요 사즉생(死卽生)인데, 처음에 진솔하게 말했더라면 오히려 믿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 이유로 쿤데라는 “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을 얼핏 느끼거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12쪽)”고 미리 예고편으르 쓰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와 반대로, 마지막 이야기 ‘에드바르트와 신’의 경우는 ‘누구도 웃지 않으리’와는 달리 죽을 각오로 문제해결에 나선 결과 상황을 주도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소설가 김연경님이 <밀란 쿤데라 읽기>에서 한 “형이상학인 것(철학과 종교)과 형이하학적[성(性)과 배설]을 뒤섞고 또 뒤집는 희(비극)이야말로 쿤데라 소설의 핵심적 요소가 아닌가 싶다.(밀란 쿤데라 읽기, 17쪽)”는 말이 꼭 들어맞는 작품들이 바로 <우스운 사랑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만, 사랑을 하는 연인들에게 흔히 사랑을 시험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히치하이킹게임’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은 휴가를 떠나는 길에 갑작스럽게 시작하는 상황극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지 못하고 극단으로 몰고 가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살짝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히치하이킹게임’이 시작되면서 운전하시는 분들이라면 격하게 공감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연료 계기판 바늘이 갑자기 0을 행해 흔들리자, 이 컨버터블은 대체 기름을 얼마나 먹어대는 건지 모르겠다고 운전하던 젊은이가 말했다.(105쪽)” 습관처럼 연료 계기판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올 때가 되어서야 주유소로 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여행할 적에 인가가 없는 산골로 들어가면서도 기름을 미리 채우지 않는 바람에 간이 조마조마한 상태로 운전해야 했던 경험이 있고, 후배의 차를 타고 도시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순간 엔진이 멎는 바람에 주유소까지 몇 십 미터 거리를 차를 밀고 간 적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끝나면서도 무언가 찝찝한 것이 마음 한 구석에 진하게 남는 느낌입니다만, ‘콜로키움’은 조금 다르게 마무리되는 느낌입니다. 병원 당직실에 모인 두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들은 서로 물리는 애정관계를 짜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거나 상대가 내비치는 욕망을 거절하는 상황이 펼쳐지다가 간호사 엘리자베트가 옷을 모두 벗은 상태로 가스가 새고 있는 방에서 발견되어 자살을 시도한 것인가? 아니면 가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일어난 해프닝인지 해석이 엇갈리는 가운데 의과대학생 플라이슈만이 프로포즈를 하는 것으로 해피앤딩으로 마무리하고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도록’에서 그리고 있는 스무 살이 넘는 나이차를 둔 남녀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은 과연 가능할까 의심을 하면서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쿤데라가 말한 것처럼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썼던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치열한 맛보다는 가벼운 느낌이 강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