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와 그의 주인 - 드니 디드로에게 바치는 3막짜리 오마주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백선희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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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대중의 주목을 받은 작품을 다른 장르에서 다루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경우는 너무 많고, 반대로 영화가 소설로도 독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는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인기몰이를 한 영화가 연극으로 혹은 뮤지컬로 각색되어 무대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장르마다 특출한 창작물이 이어지기 어려울 정도로 작가적 인프라가 척박한 탓일 수도 있겠고, 한 장르에서 이미 검증된 대중적 인기에 편승해보려는 얄팍한 상술일 수도 있겠습니다.

 

‘드니 디드로에게 바치는 3막짜리 오마주’라는 부제가 달린 <자크와 그의 주인>은 밀란 쿤데라가 작품의 모두에 붙인 ‘변주서설’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1968년 소련군이 체코를 점령한 이후 그를 도와주려는 연출가의 요청으로 드니 디드로의 소설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쿤데라는 자신이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이 빠진다면 소설의 역사는 이해될 수 없고 불완전해질 것이다. 심지어 나는 세계 소설의 맥락 속에서 고려되어야 할 이 작품이 오직 디드로의 전체 글 속에서만 고려되는 고초를 겪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의 진정한 위대성은 <돈키호테>나 <톰 존스>, <율리시스>나 <페르디두르케>와 견줄 때 드러난다.(17쪽)” 디드로의 원작을 아직 읽기 전이라서 쿤데라의 확신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코맥 매카시의 시나리오 <카운슬러>를 읽으면서 영화보다 시나리오를 먼저 읽게 되면 스스로 장면을 머릿속에서 그려가면서 등장인물의 대사를 곱씹어야 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희곡 역시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 연출부에서 작품을 고르고 전체 단원을 소집하여 초독을 하면서 연출방향이 결정되면 각 파트에서는 연출방향에 맞추어 아이디어를 모으게 됩니다. 배우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창조하고 장면마다 관객에게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쿤데라는 디드로의 원작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음이 분명한데도, <자크와 그의 주인>이 각색이 아니라 온전한 자신의 작품이고, 고유의 ‘디드로에 대한 변주’이며, 디드로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쿤데라가 밝히는 이 희곡의 구성은 자크와 그의 주인의 여행을 바탕으로 세 가지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주인의 사랑, 자크의 사랑 그리고 포므레 부인의 사랑입니다. 그는 이 세 가지 이야기를 폴리포니 기법(일종의 옴니버스 스타일로 이해했습니다만, 세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서로 뒤섞이지는 않도록 하는 기법이라고 합니다.)과 변주 기법(이 세 가지 이야기는 사실 제각기 다른 아야기의 변주라는 것입니다.)을 적용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면 같은 배우가 여러 등장인물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기법을 표현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밀란 쿤데라 읽기>에서 백성희님은 쿤데라가 이 작품에 집어넣은 이중적 장치는 “인물들도 닮고 인물들의 사랑이야기도 모두 닮았으며, 인간사가 결국 반복의 역사라는 생각(밀란 쿤데라 읽기, 180쪽)”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점은 주인과 자크의 대사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주인: 너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잖으냐! 자크: 제가요? 반복을 해요? 나리, 자기 말을 반복한다는 말보다 더한 모욕은 없습니다.(110쪽)“

 

막이 오르면서 등장한 주인과 자크의 대사는 작품 전편을 통하여 흐르는 불확실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들이나 관객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또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건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다”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섞여드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면, “전체 공연 동안 무대는 바뀌지 않는다. 무대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쪽은 조금 낮고, 뒤쪽은 조금 높아 연단 형태를 이룬다. 현재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는 무대 앞쪽에서 연기된다. 과거 일화들은 뒤쪽 연단 위에서 표현된다.(38쪽)”라는 작가의 무대설명을 꼼꼼히 읽지 않은 탓일 것입니다.

 

한 번 읽고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디드로의 원작도 읽어보아야 할 것 같고, 연극인들이 반복작업을 통하여 작가가 희곡에 담은 생각을 잡아내어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처럼 반복해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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