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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요즈음 이러저런 이유로 찾아 읽게 되는 고전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몇 차례 인상적인 인용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선은 이시 히로유키의 <세계 문학 속 지구환경 이야기; http://blog.joins.com/yang412/13225840>입니다. “명작에 등장하는 환경 문제를 날실로 하여 문제가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나 그 후의 전개를 꿰고, 동시대 인물·사건과의 연관성을 씨실로 하여 사람과 환경이 촘촘히 엮인 역사를 펴 보이려 한 것이 이 책이다.(6쪽)” 라는 기획의도에 걸맞게 다양한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환경문제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는 집약식 농업으로 지력을 상실한 초원이 이어 닥친 가뭄으로 황폐화하면서 그 땅을 붙이며 살던 사람들이 유랑하는 신세에 빠지는 과정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의 사회상에서부터 기후변화, 그리고 작가의 성향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챙겨 작품을 분석적으로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두 번째 계기는 미국의 남서부로 돌아보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김영주님의 <태양, 바람 그리고 사막; http://blog.joins.com/yang412/3242002>입니다. 농사짓던 땅을 은행을 앞세운 자본에 빼앗기고 고향을 등져야 하는 조드 일가가 오클라호마에서 LA로 이어지는 66번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장면을 그린 구절, "긴 콘크리트 도로는 붉은 땅과 잿빛 땅을 넘어 산을 휘감아 올라갔다가 로키산맥을 지나 햇빛이 쨍쨍한 무서운 사막으로 내려선다. … 사막에서는 멀리 있는 것들이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것처럼 보이고, 중앙에 자리한 검은 산들은 멀리서 감질나게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을 인용하면서 조드 일가가 이동한 길을 따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이어지는 <분노의 포도>에 대한 유혹은 결국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갔던 저의 경험을 되새겨보기 위해서라도 읽어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던 것입니다.
친구와의 우연한 충돌이 생각지 않은 살인으로 이어져 형무소에 수감된 톰 조드가 가석방되어 오클라호마의 고향에 도착하지만, 이미 고향은 가뭄과 대공황의 이중고에 땅을 은행자본에 빼앗기고, 그래도 가뭄피해가 없어 일손을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서부로 이주하기로 결정한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가재도구를 팔아 몇 푼 되지 않는 돈으로 중고차를 구입하고 개조하여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하여 스무명이 넘는 대식구가 서부로 향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서부는 그들의 희망을 채워주는 곳이 아니라 또 다른 고난의 연속이었을 뿐입니다. “뒤쪽에서 해가 떠오르더니 갑자기 아래쪽에서 거대한 계곡이 나타났다. (…) 포도원, 과수원, 크고 평평하며 초록색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계곡,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 농가들. (…) 곡식을 심어 놓은 밭들이 아침 햇살 속에서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고, 버드나무와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1권 477쪽)”
겉으로 보아서는 분명 희망에 넘쳐야 할 서부는 일꾼들의 임금을 착취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서부로 끌어들이려는 자본의 사탕발림에 속아 몰려든 이주민들에게는 다른 형태의 삶과의 싸움터였던 것입니다. 무엇이라도 먹을 것을 얻기 위하여 그나마 일자리를 두고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을 작가는 국외자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을 뿐, 조철원 교수님이 작품해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나 문제제기가 없다는 거센 비판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공황 당시의 미국 사회의 바닥을 살았던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작가의 생각으로 재단하지 않고 기록하여 전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부로 이동하는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차례로 죽음을 맞고, 그 죽음을 정리하는 일가족의 모습에서 삶을 달관한 모습을 보거나 혹은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에 들어서면서 톰의 동생이, 그리고 캘리포니아 난민촌에서는 여동생의 남편이 차례로 가족들로부터 이탈하는 과정에서도 작가는 충분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사실, <분노의 포도>라는 제목은 다음의 구절에서 왔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2권 255쪽)” 사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아, 이제 등장인물들이 무언가 상황을 바꾸려는 행동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감에 긴장감이 고조됩니다만, 작가는 그저 농장주의 횡포에 맛선 케이시목사가 허망하게 쓰러지고, 그 과장에서 톰이 사람을 죽이고 다시 쫓기는 신세로 몰리는 과정을 그려내고 말아 실망에 빠지게 합니다. 아이를 사산한 샤론의 로즈가 폭우를 피해 옮겨간 대피소에서 만난 굶주린 노인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으로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도 무언가 더 할말은 없었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