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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초상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7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12년 10월
평점 :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 http://blog.joins.com/yang412/12935937>에서 소설을 그림과 비유한 프루스트와 비유할만한 작가로 헨리 제임스를 소개한 것을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http://blog.joins.com/yang412/13259819>을 먼저 읽었는데, 주목할 점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번역하신 최경도교수님께서 작품해설에서 설명하신 성적욕구의 투사라고 하는 정신분석학적 해석까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가정교사로 생활하면서 만나게 되는 유령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일체 접촉을 끊고 있는 고용주를 만날 구실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길지 않은 작품 속에 많은 복선을 깔아 서로 연결되도록 장치하고 있어 읽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상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여인의 초상>은 <나사의 회전>보다 17년 먼저 발표된 비교적 초기 작품입니다. 번역을 하신 최경도교수님은 작품해설을 통하여 “중심인물 이사벨 아처에 대한 묘사와 그녀의 내면 심리 전개는 소설가들로부터 인물 묘사의 전범으로 거론된다. 오늘날 미국 문학에서 이 소설은 호손의 <주홍글자>와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19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소설의 반열에 올라있다.(474쪽)”고 소개하셨습니다.
쉽지 않겠습니다만 997쪽이나 되는 방대한 줄거리를 요약해보면,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언니 집에 얹혀살고 있는 이사벨 아처에게 영국에서 사는 이모 터쳇부인이 찾아와 영국에서 같이 지낼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런던에서도 떨어진 시골에 있는 터쳇가에 도착한 이사벨과 같이 지내게 된 터쳇부인의 아들 랠프는 설레는 감정이 일지만 폐결핵으로 투병하고 있는 입장을 고려하여 그녀가 품고 있는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선택으로 즐거움을 채우기로 합니다. 아버지를 설득하여 이사벨이 꿈을 이루기에 충분한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랠프의 이러한 배려는 새로운 지식에 대한 이사벨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힘이 되었던 반면, 그녀에게 다가서는 구혼자들을 가려내는데 오히려 악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사벨에게는 모두 세 사람의 구혼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먼저 터쳇가에서 만난 워버튼경입니다. 워버튼경은 재력과 영국 귀족이라는 상징적인 지위를 겸비한 최상의 남편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사벨은 워버튼 경은 유럽 전통의 귀족이라는 틀에 박힌 존재로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데 제한이 많을 것으로 판단하고 청혼을 거절하게 됩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구혼자는 미국인 사업가 캐스파 굿우드씨입니다. 굿우드는 물질적이고 남성적인 기질이 강한 타입으로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한 독립성이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아 역시 거절하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마담 멀이 추천한 길버트 오스먼드입니다. 미국에서 와서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오스먼드는 가난하지만 예술품을 수집하는 고상한 취미와 이사벨의 꿈을 이해하는 태도로 접근하여 이사벨의 마음을 사게 됩니다. 좋은 결혼상대가 아니라는 터쳇부인이나 랠프의 조언은 오히려 오스먼드에게로 마음이 기울게 만들었는데, 역시 착한 여자가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모양입니다. 마담 멀이 이사벨에게 오스먼드와의 결혼을 강력하게 추진한 배경은 이야기를 마무리할 즈음에서야 드러나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놀랄만한 반전이 아닐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오스먼드는 오히려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 이사벨을 집어넣어 예속시키고, 그녀를 무시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사벨은 오스먼드에게 가졌던 자신의 환상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스먼드의 독선의 압권은 이사벨을 배려해준 랠프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임종을 보러 가겠다는 이사벨에게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위협하는 장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랠프의 임종을 지켜보러 가는 이사벨은 지금까지 자신이 즐겨온 부가 사실은 랠프가 선친으로부터 받아야 할 유산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랠프의 임종 무렵 워버튼경과 굿우드씨로부터 새롭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비추던 작가는 의외로 이사벨이 오스먼드에게 돌아가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이런 결정은 과거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부분인데, 평생 살아온 부부가 황혼 무렵 이혼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는 요즈음의 세태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