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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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온몸이 공포로 휩싸이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저를 포함한 가족들 모습을 떠올리면서 저자가 책에 담은 내용과 관련된 일들이 있었나 되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존속살해를 포함하는 친족살해가 드물지 않은 주제로 등장하지만, 유교적 가치가 이어져 온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상상하는 것조차 피해야하는 금단의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금단의 영역이 언제까지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서, 최근에는 존속살해사건이 사회면을 장식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재찬 작가님의 <펀치>는 굳이 피하려 외면해온 존속살해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배경에는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남들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겠다는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 불러온 불행한 상황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고3병을 앓고 있는 여주인공 방인영은 어느 순간부터 부모를 살해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완전범죄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진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가 친구와 통화하면서 “자식 농사는 좆도, 죽 쒔다. 하나밖에 없는데.....(101쪽)”라는 말을 뱉는 것을 듣고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방변호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데, 아이들은 보고 듣는 것을 놀랄 정도로 흡수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아버지의 잘못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엄마는 인영이 즐겨 듣는 에릭 클렙튼의 앨범을 보고서는 친구 와이프랑 바람이나 피운 쓰레기 같은 녀석의 음악을 듣고 있다고 타박을 해서 갈등을 고조시키는데, 인영은 이 장면에서 마음의 칼로 서로를 찌르려는 증오심을 감추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3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숙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최근에는 육체적으로는 성인과 다름없는 청소년들의 정신 수준은 오히려 퇴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의 주인공 인영은 무서울 정도로 성숙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상하는 것으로 그쳐야 할 부모살해라는 생각을 현실의 세계로 가져오기 위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갈등이 폭주하는 순간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범행이 아니라 완전범죄를 노리고 세밀한 부분까지 검토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운 아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엄마의 강요에 따라 나가는 교회에서 우연히 고양이를 살해하는 남자를 발견하고 이 남자에게 부모를 살해해달라고 부탁하게 되는데, 상사를 살해했다고 실토하는 그 남자는 “피로 죄를 씻게 하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부축인 인영 제안에 엮이게 되는 것은 설명력이 조금은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런 역설적인 말장난은 인영의 꿈에 나타난 낙타가 “니가 살인자라 부모를 죽인 걸까? 아니면, 부모가 널 살인자로 만든 걸까?(149쪽)”라는 역시 알쏭달쏭한 화두를 던집니다.

 

결국 부모는 집에서 누군가에 의하여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인영의 통곡 속에서 장례가 치러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영의 부모는 인영의 계획에 따라서 살해된 것이라는 충격적인 결말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 경찰의 끈질긴 수사를 따돌릴 수 있을까요? 한편 인영의 사주를 받고 인영의 부모를 살해한 남자-비밀유지를 위하여 ‘모래의 남자’라고 부르는-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수하겠다고 인영을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인영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어긋난 운명의 톱니바퀴가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하여 새로운 상황이 잇달아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우연히 던진 거짓말을 감추기 위하여 더 큰 거짓말이 이어지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식을 낳는 순간 부모는 희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201쪽)”이라는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나의 평화를 위해 엄마도 희생당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인영을 보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것이 최선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포클레스부터 도스토엡스키를 거쳐 김소진까지, 많은 작가가 이야기했으며 독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읽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은 이야기, 오랫동안 나를 가두었던 주제에서 벗어나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작가가 준비한 반전이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야기의 전편을 통해 흐르는 ‘존속살해’라는 화두가 지나치게 틀에 갇힌 이야기라고 보았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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