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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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여행이라는 독특한 여행 프로그램을 다룬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나름대로 자료를 모아 여행계획을 세워 가족들과 같이 여행을 해본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여행을 위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고, 여행사에서 기획한 여행상품을 이용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여행은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고은 작가님이 <밤의 여행자들>을 위하여 마련한 재난여행이라는 상품은 전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들이 다양해질 것임을 내다보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재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씽크홀 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미리 알 수 없는 자연재해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와 직접 관련이 있는 재난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만, 일본정부가 공허한 목소리로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물질의 누출을 유발시킨 쓰나미가 우선 떠오르고, 적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던 동남아 쓰나미 등이 떠오릅니다.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제가 일하던 대한의사협회에서 응급구호팀을 신속하게 현지에 파견하여 응급의료활동을 펼쳤던 적도 있습니다만, <밤의 여행자들>에서 다루는 재난여행은 재난이 발생한 지역을 구경하거나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여행상품이 아니라 재난현장을 돌아보면서 과거에 있었던 재난으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는 현장학습의 기회라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내 삶에 대한 감사→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고 정리하고 재난 여행을 통하여 사람들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밤의 여행자들>은 재난여행을 기획하는 여자 주인공이 기획능력이 한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는, 일종의 삶의 과정에서 발생한 재난을 수습하기 위하여 회사에서 판매중인 재난여행상품에 참가하여 여행상품으로서 유지 여부를 평가하는 마지막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재난여행상품을 파는 여행사가 ‘정글’이란 이름을 가진 것도 어쩌면 평범한 회사원이 동료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만 살아남는 정글과 같다는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난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 재난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름대로의 느낌을 얻게 되는 여행이지만, 일단은 여행이 안전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와 인솔자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주인공이 철두철미하다면 이야기가 밋밋하게 흘러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장치하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주인공이 보여주는 대응과 타협과정을 읽는 사람이 기대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고요나과장은 남자 작가와 남자 대학생 그리고 여자 교사와 그녀의 딸 등 다섯 명으로 구성된 재난여행팀으로 베트남 해변에 있는 싱크홀 재난지 무이섬을 찾게 됩니다. 무이섬에 살던 운다족과 카누족의 거주지를 두고 끔찍한 살육이 있은 다음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그 결과 사막에 생긴 싱크홀이 재난여행의 주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일주일로 예정된 일정을 경험하면서 무언가 짜여진 각본에 따라서 돌아간다는 느낌이 남지만 일행들은 여행을 모두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작품이 다루는 재난여행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고요나과장의 귀국길에 시간의 틈새를 만들어 일행으로부터 이탈하도록 만들고 결국은 무이섬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되돌아간 무이섬은 상품으로 여행하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재난 여행지로서의 무이 역시 한계에 이르고 있는 상황, 이런 재난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이섬을 소유하게 된 폴의 숨겨진 계획이 등장하면서 고요나과장은 새로운 재난여행상품을 설계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상품을 기획하기 위하여 현지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무이섬에 사는 사람들의 아픈 과거와 무력한 현재가 안타까움으로 다가옵니다.

 

윤고은 작가님의 <밤의 여행자들>을 저는 미스터리물로 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펼쳐놓은 다양한 장치가 담긴 이야기를 구구절절 소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위기상황과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려는 주인공의 필사적인 노력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문학평론가 강유정님이 작품해설을 통하여 정글의 질서에서 이탈한 주인공 요나가 무이에서 만난 럭을 통하여 감수성을 회복하고 숭고한 세계를 완성했다고 보았습니다만, 정글이라는 일상에서 살아남는 것, 즉 질서에 순응하는 것 역시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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